은밀한 생
고주희
초콜릿 속의 암흑은 달콤하다 암호를 굽는 여자애가 발끝을 들어 나르는 방
검은 막사에 꽂힌 깃대처럼 눈을 할퀸 열매가 뱉어놓은 전쟁의 획득물
너무 오래 주저하지 마, 녹아내리는 말처럼 씹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밤
설탕과 바닐라만으로 설계되는 백 개의 조각을 내어도 계속 이어지는 질 나쁜 아몬드의 비명
눈에 구겨진 어둠은 돌아누운 축생의 잠처럼 눅눅하고
노래를 제조하는 공장에서만 밀서로 포장되는 고독한 덩어리
내 어둠이 작아 보이는 곳은 여기뿐이니까요 살갗 아래 피톨처럼 다정하게 굳어
쓴맛을 알아채기엔 무감하고 태초의 밤에서는 너무 멀어진
▶밤을 관찰하는 일이 익숙하다. 다크초콜릿처럼 혀에 달라붙은 몇 개의 집착 어를 버리지 못한다. 너무 이르게 울 담 밖으로 활짝 핀 홍매화를 본다. 아직은 고독하게 좀 더 고독하게 노래를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 수시로 밀서를 교환하는 밤의 정령들을 떠올리면 내 어둠이 조금은 작아지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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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5년 《시와표현》으로 등단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선정
시집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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