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19-12-13 오후 11:22:2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문화/여성 > 시로 여는 아침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시치미 떼다 ` / 한효정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21일
시치미 떼다

한효정


호두과자 속에 땅콩이 들어 있고
땅콩과자 속에 호두가 들어 있으면 어때
땅콩과 호두 속에 깃발을 꽂으면 어때

마음 한 조각 훔치는 일이 방을 훔치거나
눈물을 훔치는 일과 뭐가 달라 누구나
말 못할 사연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살잖아

처음 본 냉이꽃처럼 당신을 몰라보면 어때
어제 만난 사람처럼 명랑하게 하하 호호
허물없이 굴면 어때

오렌지를 거북이라 하고,
거북이를 슬픔이라 하면 어때
거북이 껍질 벗겨먹고 슬픔이랑 겨루어볼까

개똥밭을 걷고 걸어 발이 닳고
종아리가 닳아 몸통만 남으면 어때
그땐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지

여기가 바닥이라고 엎드려 울면 뭐해
냉이꽃 한 송이도 바닥을 뚫고 나오는 걸
당신과 내가 앉은 자리는 꽃들이 눈물 훔치는 자리
견디는 거지 궁둥이를 견디는 변기처럼 지긋지긋하게




▶추석날 오후 아버지와 올케, 조카들, 딸들과 함께 선유도공원 산책을 갔다. 기억을 잃어도 공원 가는 길은 잊지 않으신 아버지는 신이 나서 앞장섰다. 당신 뒤를 졸레졸레 따라다니는 다 큰 손주들이 대견한지 자꾸만 뒤돌아보셨다. 아버지에게 손자손녀들은 당신이 피워낸 꽃이었다. 여기서 한번 쉬어 가자. 버스정류장에서 아버지는 멈춰 섰다. ‘처음 본 냉이꽃처럼’ 언제 몰라볼지 모르는 손주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아버지의 화양연화일 터였다. ‘어제 만난 사람처럼 명랑하게 하하 호호’ 웃고 있는 며느리와 딸, 그리고 손주들. 그들이라 해서 아픈 사연이 없을까. 그들에게도 ‘여기가 바닥이라고 엎드려’ 우는 밤들이 있었을 것이나, 그러면 어때. 바닥을 뚫고 나온 냉이꽃처럼 웃고 있는 얼굴들은 청초하기만 한 걸.




ⓒ GBN 경북방송



▶2012년 서정시학 신인상
  서정시학회 동인
  시집 『나비, 처음 날던 날』 『사프란블루』
  에세이 『지금 여기, 산티아고』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21일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Tags : 한효정 서정시학회 미래서정 산티아고 푸른향기 김조민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사) 대한가수협회 포항경주지부 이웃나눔 실천
김석기 국회의원 초청 간담회 가져...경주여성기자협회주관
경주 황성교회, 창립 70주년 맞아 이웃사랑 몸소 실천!
안동강남초 화재 발생, 신속 대응이 인명피해 막아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한 알의 사원` / 강영은 시인
이강덕 포항시장 동정【2019년 12월 3일(화)】
경주시새마을회, ‘사랑의 김장 담가주기’ 행사 개최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자전거 배우기` / 조영란 시인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지평선을 바라본다` / 성향숙 시인
포항시시설관리공단 공영주차장 신용카드 전용결제 전면 시행
포토뉴스
시로 여는 아침
초식 동물이삼현달도 없는 밤신접살림을 차린 반지하 단칸방에 퍽, 알전구가 나갔다갑.. 
자전거 배우기조영란몸이 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정할 것바람이 재촉하는 대로 미래를 .. 
감나무 가지가 까치밥 하나 껴안고 있다 까치밥이 흘러내린 붉은 밥알 껴안고 있다 .. 
최동호 교수의 정조대왕 시 읽기
정조는 1752년 임신년에 출생하여 영조 35년 1759년 기묘년 2월 12일 세손으로 책봉되..
상호: GBN 경북방송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232(황오동 110-1) 2층 / 발행인 : 진병철 / 편집인 : 황재임
mail: gbn.tv@daum.net / Tel: 054-773-0456 / Fax : 054-773-045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00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진병철
Copyright ⓒ GBN 경북방송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