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고양이의 탐구생활 ` / 임재정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9월 02일
고양이의 탐구생활
임재정
오로지 나만 둥근 여기서
장판 밑을 흐르는 온기에 몸을 빼앗겨도 그만인 나는 보풀 투성이 갸르릉 가문의 털실뭉치랍니다
간밤 벗어놓은 잠옷에 기어들어 구깃한 나의 조금 눅눅한 갸르릉, 꿈이 온몸을 휘돌다가 꼬리에 막혀 되돌아오는 소리
소스라칠 일 없는 발톱 밑이 새까매졌어요 적당한 긴장은 건강에 좋다지만, 등뼈에 세든 용수철과 녹슨 송곳니와
달리는 기차를 상상하면 내가 빵! 하고 터질 것 같아 긴 꼬리로 누군가 유혹하지만 대부분 내가 걸려들죠
현관문은 어찌 저리 도도한지, 궁금해 할수록 거실 창문은 수직으로
아득하고 아교처럼 찐득한 어둠이 되죠 주인 여자와 여자의 남자와 그들의 저녁시간은 수제비 반죽 치대기에 따라 서열이 바뀌는, 식상하지만 뭐 어때요
냄비를 빌미로 둘러앉은들 후루루 식어버릴 텐데 바깥 공기를 만나면 등을 활처럼 당기고 나도 금세 비등점을 뚫고 솟구칠 텐데 날카로운 것들은 함부로 날뛰지 않아요 온종일 수염을 쓸며 목표를
노리는 레지스탕스처럼 긴 꼬리에게 태연히 휴가를 줄 수도 있어요 끝이 좋다면 그밖에 또 뭐가 필요할지, 그러나 이즈음 반죽꺼리는 충혈된 눈이에요
오늘은 막 눈 똥을 모래에 묻으며 무덤가 소녀처럼 글썽해서 오래 웅크렸습니다
▶주위에서 노래하지 않는 새와 꿈꾸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생명들은 움직이고 살아있지만 박제처럼 생기가 없으며 내게 속한 어느 감정도 흔들지 못한다. 그때마다 돌아보게 되는 몇 가지의 사실들은 박제된 삶에 우리를 등치시키곤 한다. 가령 아이들이 특유의 호기심과 활력 등의 속성을 팔고 그 대가로 얻어낸 핸드폰과의 동행과 내가 스스로 잘라버린 몇 개의 길 대신 오늘 걷고 있는 보편적 삶은 어쩌다가 지금 여기에서 현실을 꺼내오고 있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박제된 고양이는 예민하다. 함부로 자신을 쏘아 과녁을 탐하지 않으며 외부에서 짓쳐드는 대부분의 호기심을 갸우뚱해 하면서도 외면하는 것으로 건너뛸 줄도 안다. 주인에게 쉬 굴종하는 일도 없다. 조용히 제 내수면에 머리를 박고 어딘가를 앓고 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끊임없이 안쪽의 무언가를 갸르릉, 두드리면서. 그것이 초조한 자기를 얼마나 들키는지 뻔히 알면서도. 고양이가 자신을 풀어놓지 못할 때 나 역시 박제된 동안을 살고 있으므로, 장담컨대 그도 나를 탐구하며 애처로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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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 <진주가을문예>으로 작품 활동 시작.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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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09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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