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초록을 위한 파반느` / 김미승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9월 04일
초록을 위한 파반느
김미승
창밖 느티나무에 와작와작 초록 불이 켜진다 멀리서, 얼었던 강이 소리치며 깨어나는 소리 뿌리가 뿌리를 찾아 물 건너오는 소리
초록은 세상에서 가장 아픈 빛깔 살과 피와 뼈를 다 태워야만 얻을 수 있는 결기의 색
초록에 감전된 느티나무가 열 세 발자국을 뗀다 전설처럼, 겹겹이 하얀 정신을 껴입고 시베리아 동토의 자작나무 숲이 된 그녀* 생을 다해 걸어간 아무르의 열 세 발자국 그 초록혁명을 보네
구름, 신발, 의자, 고지서 그리고 시와 와작와작…… 나의 절망이 깨어나는 소리
느티나무의 시큰한 발목에 얹히는 오후의 햇살 지지직, 노선을 우회하며 휘어지는 가지 길이 없는, 허공에 길을 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사회주의자이며 독립운동가 김알렉산드라. 1918년 33세에 러시아 하바롭스크 아무르강가에서 총살당했다. 죽기 직전 그녀가 걸었던 열 세 발자국은 조선13도의 독립을 의미했다고 한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잎을 틔우는 나무들, 그 나무들의 연초록 잎을 보며 나는 늘 요란한 감탄사만 연발했다. 정작 그 잎을 틔우는 나무의 수고에는 무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오후의 햇살 아래 초록 잎을 가득 피우고 선 느티나무가 달리 보였다. 저 초록을 틔우기 위해 나무가 겪었을, 혁명과도 같았을 통증을 생각했다. 초록은 피와 살과 뼈를 다 태워야만 얻을 수 있는 결기의 색, 혁명의 색이 아닐까. 초록은 가장 편안한 색이 아닌 가장 아픈 색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병상련이랄까. 어두운 시절 혁명가들의 통증이 그러했을 것이고, 자본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강파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또한 그와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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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99년 계간 <작가세계>로 시 등단.
시집 『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익어 가는 시간이 환하다』 등,
청소년소설 『세상에 없는 아이』, 『저고리 시스터즈』 등, 동화 『잊혀진 신들을 찾아서, 산해경』, 『상괭이와 함께 떠나는 다도해』,
『소곤소곤 설화모리』(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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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09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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