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말복` / 박소원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9월 25일
말복
박소원
“애비 죽으면 장례식에 올 거니?. 보름달이 뜬 늦은 밤. 고요히 죽고 싶구나.” 아버지는 항상 나의 꿈이었다. 남도(南都)에서 태어나 남도에서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젊은 날처럼 어색하게 서울말을 쓰는 아버지. 열 오른 내 손목을 잡아당기며 장독대를 돌고 돈다. 장항아리 뚜껑을 열고 잘 발효된 고추장들 묵은 된장들 간장들 죄다 손가락으로 푹푹 찍어 맛보여주고는 화단에 만개한 꽃처럼 얼굴을 붉히는 아버지.
새로 지은 그의 집, 내관(內館)과 외관(外館) 집밖에 잘 닦여진 주차장까지 부록처럼 모두 펼쳐 놓고는 “둘째야, 애비 장례식에 꼭 와라” 그의 집은 벽마다 문이 넓었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놓고 한 걸음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와 나의 간격이 좀 더 헐거워졌을 때, 말복 태양이 빙 둘러 친 벽 안으로 침몰하였다. 그는 아이처럼 쉽게 졸라대며, 절뚝절뚝 나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판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많이 예뼈하셨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지 못했다. 유난히 아버지는 나를 귀여워하셨고, 유난히 나는 아버지를 따랐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동안, 그래서 내가 더욱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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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4년 계간 문학선 등단 시집 「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 한중시집 「수식곡성: 울음을 손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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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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