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모든 순간이 그림자였네` / 박수원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9월 27일
모든 순간이 그림자였네
박수원
시월의 햇살은 황홀타 못해 가슴 뭉클한 클림트의 색 우로 요동친다 이제쯤, 온 들녘은 은혜로운 황금빛 축제 벼이삭 고개 숙인 채로 그 옆 같이 서서 머리 숙이면 내 그림자도 금세 황금이삭이 된다 가장 낮은 자세로 고개 숙일 줄 알아야 천연히도 물든 가을의 그림자로 남는다는 것을 아주 천연히도, 함창 들녘 한바탕 꿈이던 벚꽃 길 떠나고, 장대비 주루룩 떠나고 시샘하던 폭풍우까지 휘몰아쳐 떠나고 난 뒤 그 황금이삭 옆에 선 내게 내게만 보내는 눈빛으로, 가물가물 타오르는 서슬 퍼런 젊은 날 그 사진첩의 반란을 부추킨다
모든 순간이 그림자였네 향기도 닮은 그 대로의 그림자였네
주절거리는 클림트의 논두렁 따라 메뚜기가 팔짝 뛰논다
▶무더웠던 여름의 끝. 하늘이 갑자기 높아지고 소슬바람마저 살랑대고 있다. 머지않아 들판은 황금의 옷을 갈아입고 고개숙인 벼이삭을 선사하리라. 또 자숙의 시간으로 이끄리라. 그때마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반추하게 된다.
함창 들녘의 무한한 변주를 바라보며 가을은 인생에서 나의 지금과 같다.이제야 정감어린 눈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고 고개 숙인 벼이삭에서 무한한 가을의 그림자를 만끽할 수 있다. 가을의 그림자는 시퍼렇던 젊은 날의 자만과 무모함이 배인 뻣뻣한 그림자가 아니다. 유연성 있게 허리를 굽힐 줄 아는 그런 그림자다. 클림트의 색보다 더 황홀하고 은혜로운 황금의 들판, 그 속에서 나도 고개숙인 그림자가 되어 본다.
매순간을 사랑하며 향기 있는 그림자를 가을의 들판에서 배운다. 그 그림자는 허무의 반추도 아니고 절망이 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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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4년 인간과 문학 신인상
제1회 더 좋은 문학상 수상
동국문학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인협회 회원 인간과문학파 동인
시집 「그림자의 말」 「너무나 인간적인」 「가면 놀이」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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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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