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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수박처럼 여름이` / 최은진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24일
수박처럼 여름이

최은진


발꿈치를 최대한 들었다
희망이 돋아날 것 같아서

세상은 알고 우리만 모르는 불가능과
세상은 모르고 우리만 아는 가능 사이에서

찬란한 푸름 속에 핏빛 속살 감춰 둔
여름을
반으로 자르자
빨간 감정이 칼을 타고 흘러내려
나무도마에 스며들었다

도움닫기만 하다 끝나버릴 감정들

과즙이 뚝뚝 흐르는 수박이 목이 메는 이유는 뭘까

검푸른 껍질 속에서 밤마다 숨어 앓다가
스스로 가슴에 생채기 내어
붉어졌을 여름,
며칠째 이어지는 장마에도
늘 목이 탔다

출발선 앞에 멈춰서버린 멀리뛰기 선수처럼
수박먹은 뒤 마시는 물처럼
싱거워질 감정들,
아직은 붉은데

세상은 모르고 우리만 알았던 희망이
세상 모두가 알고 우리만 몰랐던 절망임을
마침내 우리가 알게 된 순간
여름은 끝이 난다

끝물 과일의 밍밍함을 알면서도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9900원 특가세일 수박
무거울지 가벼울지 저울질하다
끝나버릴 여름이
수박처럼 익어갈 때
지금은 빨간 감정 밴 도마를
햇빛에 말려야 할 시간




▶잠깐 반짝, 하다가 여름은 꺼져 버린다. 첫사랑처럼.
뜨거운 여름이었다. 한 번도 뜨거웠던 적 없는 나를 조롱하듯 심장도 녹일 것 같은 더위였다. 갓 딴 수박 한 덩이를 받아들고 돌아온 날, 에어컨이 식혀 놓은 서늘한 주방에서 붉은 심장을 쩍!하고 내보이던 수박, 미처 식지 못한 과즙에서 열기가 훅!하고 내 손등으로 옮겨왔다. 뜨거워져도 될지 말지 망설이다 끝나버리는 모든 처음들.
빨갛게 익어버린 심장이 질문으로 가득 찬 계절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었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19년 <서정시학> 등단
   서정시학회 동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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