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스크래치` / 안차애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6월 09일
스크래치
안차애
무의식은 검다고 프로이드는 말한다 검은색은 두려움의 기호 아직 튀어나오지 않은 것들이 덜컹거린다 라일락꽃이 떨어지는 땅바닥에 한참이나 쪼그려 앉아 있었다 꽃 색을 반성하는 한나절의 마음이 거멓게 뭉개진다 지워지거나 치워지는 것은 모두 검게 변색된다 색 색깔을 칠한 뒤 검은 크레파스로 덧씌워야 완성되는 스크래치놀이처럼 라일락의 입술들이 숨었다 표정이 없는 것이 표정인 엄마가 꼭꼭 숨었다 문장을 다 배우기도 전에 철부터 들어버린 아이의 웃음소리도 검은 색 저편에서 여기에요 엄마, 나 잡아보세요 엄마 검은색은 검은색이라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파묻은 색깔들이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올 예정이라서 위험하다 내가 나로 태어난 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꽃들은 결백하다 제각각의 살색으로 피었다가 죄책감으로 지고 있는 꽃들의 얼굴, 검은 빗살무늬로 타오른다 최초의 번개가 탄생하듯 처음의 무의식이 굴러나온다 내 모습의 유령이다
▶사랑하던 것을 잃는 것은 아프다. 그것이 내 살처럼 애틋한 가족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사랑한 사람, 사랑한 시간, 사랑의 지문이 묻어나는 공간들 소중한 것들이 문득 깨지던 순간의 파열이 너무 아파서 차마 복기(復棋)할 수도 없어서 사랑의 빛살, 사랑의 향기, 사랑의 무늬까지 꼭꼭 파묻었다. 검은 색 밑에 숨긴 감정의 색들은 언젠가 스크래치 사이로 튀어나와 상처의 이름으로 나를 할퀸다는 것도 모르고...
제 각각의 살색으로 사랑의 한 시절은 완성되었으니 사랑인 사람 사랑인 시간 처처(處處)의 환한 빛살들이여
지금도 우리 사랑은 총천연색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검은 장막 너머의 유령으로 떠돌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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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불꽃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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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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