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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흰 시간 검은 시간` / 최정란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13일
흰 시간 검은 시간

최정란


그 많은 흰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가나 그 많은 모래알 같은 아침들, 그 많은 팥알 같은 저녁들, 그 많은 사약 같은 밤들, 내가 다 먹지 푹푹 내가 다 퍼먹고, 후루룩 들이마시고, 구석구석 시간의 뼈와 뼈 사이 알뜰히 내가 다 파먹지 시간을 뜸이 잘 들게 짓는 일은 내 몫, 시간의 가시 사이 살점을 잘 발라 먹는 일도 내 몫, 시간을 편식 없이 골고루 먹이는 일도 내 몫, 시간을 먹으며 나이를 먹지 이를 다 먹어버린 입을 오물거리지 잇몸으로 천천히 사탕을 빨아먹지 느리게 느리게 시간을 녹여 먹지 도둑처럼 검은 요리사가 시간의 부엌에 쳐들어오면 내가 짓지 않은 시간이 차려지지 간이 맞지 않는 시간의 식탁, 남이 지은 새벽, 남이 지은 오후, 남이 지은 시간의 맛은 낯설어, 남이 지은 시간은 먹을수록 허기가 지지, 방금 저녁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시침을 떼지 밥 달라고, 시간 더 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




▶아침 먹는다. 저녁 먹는다. 우리말은 시간과 식사가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밥을 먹는 일이 시간을 먹는 일이다. 삶의 순간을 제 정신으로 사는 것이 시간을 짓는 일일 것이다. 치매가 오면 자기의지로 시간을 살지 못하게 된다. 고령화 시대, 자신이 짓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영혼의 기아상태를 견디는 일의 참혹이여!




ⓒ GBN 경북방송




▶약력
   2003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2019 제19회 <최계락문학상>
   2020 제22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시집 『장미키스』 『사슴목발애인』 『입술거울』 『여우장갑』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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