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김지녀
우리는 불행의 서사에 익숙하다 정규 방송 시간이 끝난 후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주인공의 불행은 쉽게 바뀌는 상점의 간판들처럼 또 다른 주인공의 불행으로 얼굴만 바뀌는 것
국수집이 어느 날 사라지고 국수집 사장은 또 다시 국수 삶을 곳을 찾아다닐지 모르고 국수를 먹으려고 왔는데 국수 대신 설렁탕을 먹어야 하는
우리는 조금씩 또는 매우 불행하다 유일한 연속극의 주인공이지만 조연처럼 소리 없이 웃고 있는 오늘 저녁은 차마 불행을 말하기 어려운
거리의 상점들은 불을 켜지 않고 있다 불행 이전의 마음은 무엇이었나 이전의 이전은
눈이 많이 내리는 거리를 쓸어야 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거리에 우산을 펼쳐야 한다
불행이 시작되는 건 여기서부터인지 모른다 불행을 껴안고 같이 울어야 할 우리는 불행을 잘 모른다 불행의 서사는 우리의 아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제목을 빌려왔다.
▶코로나 19의 공포로 시작해 절망과 불행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2주씩 연장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멈추지 않고, 봄여름가을겨울에 마스크를 씌우고. 다시 가을이 왔다. 고깃집을 하고 있는 가까운 이웃은 겨우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이젠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떤 위로와 위안을 할 수 있을까. 그저 흘려듣기 좋은 이야기나 해주는 것으로 이웃과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웃의 절망이 깊어갈수록 불행을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불행이 내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불행들이 너무나 많고 무겁기 때문이다. 행복한 우리의 서사는 왜 순간 왔다가 지워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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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편운문학상 우수상
김춘수문학상 수상
시집 『시소의 감정』 『양들의 사회학』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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