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심다
신영조
비 내리는 오늘은 텃밭에서 당신을 나의 밭에 심었습니다 빗줄기 소리는 시원했습니다 당신을 심는 내 마음에 내내 뻐꾸기가 울곤 했습니다 내 속에 심은 당신이 행여 가뭄 들까 내 속에서 크는 당신이 행여 홍수 질까 나의 둑에 갇힌 당신을 어제는 잠시 허물기도 했습니다 뙤약볕이 우리가 걸어간 밭을 쪼개어도 긴긴 장마가 우리가 지나온 길을 없애도 먹먹한 개구리의 기막힌 소식과 함께하면 밭둑에 혼자 서 있는 날도 바람 불지 않았습니다 돌아다 봅니다 젖어있던 밭둑도 내일 아침이면 짱짱 장화의 뒤축에 눌린 젖은 날도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가죽나무 사이에 걸린 가죽 같은 건조한 날도 당신과 함께하는 밭둑에서 비를 한번 심는다면 잠시 메말랐던 퇴근길은 막걸리 잔 속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낼 것입니다
▶이 시를 쓰는 그날도 텃밭에서 씨앗을 심었다. 함께 있던 텃밭 친구들과 농막에서 막걸리 한잔을 하는데 비가 내렸다. 텃밭에서 씨앗을 뿌리는데, 時앗을 뿌릴 수는 없을까? 궁리하다가 나는 씨앗도 아니고, 時앗도 아니고 비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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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5년《현대시학》 신인상
2016년 대구문협 올해의 작품상
시가마 동인
시집 『눈물을 조각하여 허공에 걸어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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