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간 자리
한성근
꿈꾸는 천지간에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무아의 경지까지 발걸음 흔들리지 않고 마침내 도달할 수 있다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조리 정수리에 박힌 비열해진 탐욕들만 붙안은 채 슬픔을 참지 못한 볼품없는 잡동사니처럼
빈 공터에 홀로 남겨져 처량하게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퍼붓는 야유와 조소가 쏟아진다
걸어온 만큼 가야 할 곳도 안개 속일 텐데 훗날의 나를 헤아려 볼 희미한 불빛마저 사라져 버린다 할지라도 내용도 없는 허술한 기억들은 무엇을 말하려고 낯선 곳을 무작정 바장였는지
심장이 점점 차가워지는 동안 깊어 가는 저물녘부터 거꾸로 흐른 날들이 하도 아득하여
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고적함을 이기지 못해 스쳐가는 바람에게 지청구하면서 세속에 오염된 허욕들을 뿌리쳤어야 했었을까
서둘러 가 닿을 어디쯤에선가
모든 것 닻 감아 버린 시선이 아직도 숨 가쁘게 맞닥뜨리는 가슴 떨림으로 모른 척 무심히 지나쳐 갔을 것만 같아 이제서야 비로소 잊힌 그리움 남김없이 견디려 한다
▶녹록치 않은 세상은 매번 되풀이하여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쳇바퀴 돌리듯 스스럼없이 사람들에게 안겨주는가 보다. 살아가면서 후회 없는 삶이 어찌 있으리오마는 행복과 불행의 경계에서 제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탱해 나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겠다는 단단한 의지만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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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8년 《인간과문학》 등단
좋은문학상을 수상
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발자국』 『부모님 전 상서』 『바람의 길』 『채워지지 않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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