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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시인 "하늘 채마밭"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2년 11월 23일
하늘 채마밭
 
 
김득진

ⓒ GBN 경북방송




장롱 속 반짇고리 열면 어머니의 채마밭이 펼쳐진다
색동 헝겊 뭉치에서 푸성귀 냄새를 맡던 어머니가 가위를 집어 든다 골라낸 천을 마름질하여 조각보를 만드는 손에서 흙냄새가 난다. 여동생 설빔으로 색동저고리를 만들 때는 채마밭에 무지개가 핀다 벌겋게 단 인두를 호미 삼아 섶을 지지면 엄마의 설렘도 반반하게 갈무리된다 누나 시집보낼 무렵 지어낸 치마는 농사일로 한 맺힌 엄마의 피가 고인 듯 붉다

걸림돌을 헤치며 육십 년 농사를 지은 어머니 갈라진 손마디에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마디마다 뼈아픈 곡절들이 한숨을 쉰다 오랜 농사일로 품삯을 모아 어머니는 채마밭 한 뙤기를 산다 시부모 원망을 씨앗 뿌려 밥상보에 카네이션을 가꾼다 아버지 천도제를 대신하려고 베갯잇에 원앙 한 쌍을 기른다 자식들 배곯지 말라고 횃대 보에다 황금 들녘을 수놓는다 당신 가볍게 하늘로 오르라고 학이 노니는 모시밭 한 채를 일군다 늦게 얻은 채마밭엔 어머니 밤 잊은 손길로 색색의 농작물이 눈에 띄게 키를 키워 수확 할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추수를 끝낸 어머니가  침침한 눈으로 열렸던 반짇고리를 닫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버지더러 채마밭을 내려다보라고 그러는지 먼 손짓을 더러 한다 삭신이 쑤시다는 어머니를 둘러싸는 안개에 모시밭이 사라지면서 언뜻 아버지 모습이 비친다 어머니가 가꿔야 할 하늘 채마밭에서는 가족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울려난다
 
 시 감상

반짇고리를 열어놓고 갖가지 농사를 짓듯이 색색가지 헝겊으로 조각보를 잇거나 이불홑청을 시치던 일을 생각해 본다. 요즘은 조각보도 쉽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불홑청도 지퍼를 달아 닫아버리면 된다. 그러니 굳이 바늘에 찔려서 피흘려가며 바느질 할일이 없다.
어머니 때를 생각해 보면 삼년만 길쌈을 하지 않으면 앞을 소쿠리로 가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의와 식이 자급자족하는 생활이었으니 그 고생을 말로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바느질로 벌이를 하신분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할까.
채마밭을 가꾸듯 바느질도 온 정성을 다하시니 반짇고리마저 채마밭으로 보아진다. 여동생 색동저고리에서 무지개가 피고 불에 단 인두로 섶의 주름을 반듯하게 피는 일은 엄마의 설렘을 정돈하여 갈무리 하는 일이며 혼기를 앞둔 누나의 다홍치마는 농사일로 한이 맺힌 엄마의 붉은 핏빛 마음이리라.
남편을 여의고 천도제 대신으로 베갯잇에 원앙 한 쌍을 기르고 횃댓보에 곡수 넉넉하게 황금들녘을 수 놓으셨던, 이제는 늙으신 어머니를 둘러싸고 무럭무럭 자라 추수한 알곡처럼 그득한 자식들의 도란도란 정담어린 모습을 그려본다. (김광희)

작가 약력

김득진: 시인 소설가
. 문학시대 희곡 <다시, 공자를 죽이자> 신인상 당선 ,제3의 문학 단편소설 <가을바람> 신인상 당선, 부산예술제 전국백일장 장원, 제1회 한춘문학상 수필부문 금상, 제8회 농촌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2012 시에 단편소설 <어떤 각본> 신인상 당선, 2012 자연사랑 생명사랑 시 공모전 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연제 문인 협회 회원, 축정문학회 회장
시집 <커피를 훔친 시>,한국기록원 "커피를 주제로 한 시 119편"으로 한국기네스 인증.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2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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