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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경주남산 / 정호승 시인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30일
[시로여는 아침]

↑↑ 정호승 시인
ⓒ GBN 경북방송

경주 남산



정호승



봄날에 맹인 노인들이
경주 남산을 오른다
죽기 전에
감실 부처님을 꼭 한번 보고 죽어야 한다면서
지팡이를 짚고 남산에 올라
안으로 안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감실 안에
말없이 앉아 있는 부처님을 바라본다
땀이 흐른다
허리춤에 찬 면수건을 꺼내 목을 닦는다
산새처럼 오순도순 앉아 있다가
며느리가 싸준 김밥을 나누어 먹는다
감실 부처님은 방긋이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맹인들도 아무 말이 없다
해가 지기 전
서둘러 내려오는 길에
일행 중 가장 나이 많은 맹인 노인이
그 부처님 참 잘생겼다 하고는
캔사이다를 마실 뿐
다들 말이 없다


-정호승 시집『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비평사,1999)




[시 해설]

여태껏 경주 남산의 감실 부처를 영접한 시인은 몇이나 될까? 정호승의「경주 남산」이라는 이 시를 읽고는 여러 시인들이 경주 남산으로, 또 그 품속에 있는 감실 부처의 품속으로 많이도 달려갔으리라. 그곳으로 달려간 시인들은 부처를 만났을까? 정호승 시인은 어느 봄날 경주 남산 동쪽 산비탈에 있는 부처골의 감실 부처를 찾아가 진짜 부처를 만났던 모양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세상의 밥상 위에 공양으로 턱 내놓았으니. 정호승 시인이 부처를 만났던 것은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 간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盲人) 노인들 덕분이었다. 맹인이 “말없이 앉아 있는 부처님을 바라본다”는 게 거짓말이라 하지 마라. 몸으로 또 마음으로 보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부처님 참 잘생겼다”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 “감실 부처님은 방긋이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맹인들도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서로들 다 봤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염화미소(拈華微笑)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평생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맹인 노인들, 그들이 인간적 고통의 극한까지 걸어간 부처, 예수의 몸과 뭐 그리 다르겠는가? 부처는 지금, 여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 안에 있음이니.

-이종암(시인)






저자 정호승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외가는 경주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별들은 따뜻하다』『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이 짧은 시간 동안』『포옹』’『밥값』『여행』등이 있고
동시집 ‘『참새』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마디』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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