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승 시인"오늘 아침"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3년 12월 13일
2013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작
오늘 아침, 신호승 오늘 아침, 야쿠르트 아줌마가 없어서 이 거리는 슬프다, 그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 지난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폭포수 찜질방에서 익사체로 걸어 나왔다, 햇빛은 끝내 구름을 따라 출근하지 못한다, 쇼 윈도우에서 비친 나방이 파도처럼 한번 파닥거린다, 결국 생각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 버스, 점자 책 같던 가로수도 고비 때 마다 사라질 것이다, 길은 아직도 두고 온 밀림 속에 들어가고 싶다,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다시 담배 불을 붙이자 사방천지 불 꺼진다, 표류하는 하늘, 등대 없인 해도 달도 뜨지 않을 것이다, 어둡지만 익숙해야 하는 이름을 천천히 불러야 한다, 나뿐 만은 아니라고 엽서를 쓰자마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약속 다방 무릎 위에 앉아 희희덕대다가 여러 날 가출한다, 밤에만 문을 여는 동평화 약국에서 아스피린 같이 활짝 핀 하얀 머리통을 다 팔고 나왔다, 사장도 없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자 겨울이 끝났다, 봄이 오면 새벽 개떼들을 따라 다닐까, 그렇게 꽃피우고 싶다고 꽃이 핀다,
<작가 약력>
신호승,
2013 진주가을 문예 당선
<시 감상>
늘 오던 야쿠르트 아줌마는 왜 또 오늘 아침엔 안 오는 거야, 지난밤에 죽도록 비난했던 그가 그인지 나인지 모를 그는 오늘도 되살아나고 아직 잠이 덜깬 나는 찜질방에서 반 죽어 나온다. 해는 떴는데 구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출근해야 하는데 그렇게 출근할 수가 없다. 쇼 윈도우에 부딪쳐 파닥거리는 나방이 마치 내 신세나 마찬가지다. 나를 태워갈 버스는 오지 않을 것이고 길을 인도해 주던 점자책 같던 가로수도 사라질 것이다. 나는 아직도 두고 온 길에 미련이 남아있어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떠나온 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 앞길은 담뱃불만큼의 빛도 없이 캄캄하다. 등대 없는 길은 갈 방향이, 목표가 없다. 이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실업자라는 이름에 익숙해야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고 위로해 보지만 춥기는 마찬가지다. 약속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밖으로 돌면서 희희덕대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여러 날 가출을 한다. 떠벌이 약장사처럼 영양가 없는 대화로 머릿속이 다 비고 밑천을 다 들어내 버린다. 늘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가 결국은 문 닫게 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제 겨울을 끝냈다. 봄이 오면 새벽부터 우우 몰려다니는 개떼들처럼 어디 슬슬 움직여 볼까.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면 되겠지. 실업자가 되는 것은 한마디로 재수 없는 날들이지만 내게도 꿈은 있다는. 실업청년의 슬픈 비애를 물씬 풍기는 시다. 실업과 취업, 청년들이 가장 절실한 숙제가 환하게 풍경으로 그려진다. <김광희 > |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3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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