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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시인 - '익은 탑'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4년 01월 13일
ⓒ GBN 경북방송


익은 탑



이하석




탑이 쌓이건 무너지건 도로변 흥정은 자주 유쾌하다

무너지면 포도 위 나딩구는 사과들까지 날렵하게 주워

할머니는 매번 정성들여 다시 쌓는다


상원사 폐탑 사진을 내 방의 책상 위에 세워두었지만

그건 그것이고,

푸성귀와 함께 길가에 늘어놓고 사과 한 상자를 종일 앉아서 파는 할머니는 고운 탑을 하루에도 수백 번 우리 동네 앞 길가에 쌓는다


제일 아래층은 다섯 개,

그 윗층은 세 개,

그 위 꼭대기층은 한 개로

한결같이 가지런하게 쌓여지는 삼층탑들


폐탑이란 있을 수 없는 저 탑의 높이는 가장 맛있는 높이

어느 누구도 올려다볼 수 없어 아이들까지도 내려다보는,

그 높이가 아주 낮아도 거룩하게 까마득해 할머니가 내내 그윽해하는,

황혼 어른댈 녘이면 없어졌다가 아침 해 그림자 짧을 때 쯤 늘 새로 나타나 세워지는

우리 동네의 싱싱한 거리탑들


-이하석 시집『상응』(서정시학,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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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오대산 월정사 지나 상원사에 가 보았는가? 그곳 영산전 앞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탑을 보았는지. 탑이 무너져 내린 그 막돌들을 그냥 대충 쌓아올린 상원사 폐탑이 내뿜는 향기를 가슴에 담아보았는지. 대구 가창골에 살고 있는 이하석 시인은 동네 앞 길가에서 ‘익은 탑’을 발견한다. 무생물인 탑이 익다니, 무슨 말인가? “푸성귀와 함께 길가에 늘어놓고 사과 한 상자를 종일 앉아서 파는 할머니”가 세운 탑이다. 이 익은 탑은 “제일 아래층은 다섯 개,/그 윗층은 세 개,/그 위 꼭대기층은 한 개로/한결같이 가지런하게 쌓여지는 삼층탑들”이다. 그 탑 무너지면 매번 할머니가 정성들여 다시 쌓으니 “폐탑이란 있을 수 없는”것이고 또 “어느 누구도 올려다볼 수 없어 아이들까지도 내려다보는,/그 높이가 아주 낮아도 거룩하게 까마득해 할머니가 내내 그윽해하는” 탑이다. 그대여, 저 잘 익은, 싱싱한 거리탑들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옮겨놓으시라. 그러면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꽃 활짝 피고 또 피어날 테니. 언어를 펼치고 포개어 이렇게 익은 탑을 세상에 전파하는 시인 이하석, 그는 또 어떤 사람일까?-시해설 이종암 시인-



이하석 시인은 1948년 경북 고령 출생하였고, 경북대학교 사회학과를 중퇴했다. 1971년『현대시학』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투명한 속』『김씨의 옆 얼굴』『우리 낯선 사람들』『측백나무 울타리』『금요일엔 먼 데를 본다』『녹』『고령을 그리다』『것들』『상응』을 상재했다. 김수영문학상, 도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대구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4년 0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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