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옥 시인"반영하지 않는다"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4년 05월 22일
| | | | ↑↑ 채수옥 시인 | ⓒ GBN 경북방송 | |
반영하지 않는다 채수옥
저녁이 되자 f, 는 표정이 다른 길들을 한 다발 끌고 들어왔다 접힌 유리와 창문들이 서류가방 속에서 쏟아져 나오자 거실은 혼자 날카로워졌다
저녁이 되자 s, 는 온 몸에 앵무새 울음을 주렁주렁 매달고 들어왔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지 않아요- 식상해진 입술은 뜯어내도 자꾸만 돋아났다
저녁이 되자 m, 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설거지통 속에서 심야영업은 얼룩진 혓바닥들과 뱉어낸 말들을 습관적으로 문질렀다
저녁이 되자 b, 는 붉은 화살표가 그려진 헬멧 속에 구름을 눌러 쓰고 들어왔다 벽속으로 들어가 시커멓게 번지는 곰팡이의 일상에 몰입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한 장이 들어온 저녁들을 불러 모았다 정면을 보고 이빨들이 웃는다
2012년 「시와반시」, 겨울호
작가 약력: 2002년「실천 문학」등단
시 감상
f는 셀러리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각기 표정이 다른 거리로 돌아다니다 저녁이 오면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집에까지 그 업무를 들고 와서 서류가방을 쏟아놓는다. 모든 일상이 널브러진다. 접힌 창문들로 인해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한 일들이 떠오른다. 거실은 이미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팽팽하다.
s는 울음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왔다. 세상과 부딪혀 울음부터 쏟아낸다는 것은 자신은 헤쳐 나갈 능력이나 소신이 없으니 누군가가 도와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식구들은 저 혼자 째각 째각 돌아가는 벽시계나 마찬가지다. 이러니 내가 무슨 꿈이 있겠나. 나는 포기했으니 바라지 마라, 뭐 그런 복선이 깔려있다. 입술을 뜯는 s를 보면서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마른 입술을 자꾸 축이게 된다.
m은 돌아오지 않았고 b는 뜬구름만 잡다가 돌아와서는 먼지처럼 쳐 박혀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함께 모여야 할 가족대신 저녁을 모아 놓고 어둠을 향해 김치~공허한 이빨들만 신들신들 웃는다.
작가의 시작메모에서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해체된 지 오래다. 말만 가족이지 냉담한 동거인으로서 각자 제 일만 할 뿐이다. 뼛속 깊이 존재의 고독과 마주할 뿐, 그나마 s는 가족들에게 울음으로서 도움을 청하고 함께이고 싶어하지만 벽에 붙은 가족사진만 가족이라는 것을 인증하고 있다. 가족이면서도 서로 반영되지 않는, 소문자 f,s,m,b와 같이 소시민이 냉냉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오늘날의 현실을 잘 꼬집은 시이다. (김광희시인) |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4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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