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4-24 오후 08:30: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문화/여성 > 시로 여는 아침

구광렬 시인" 나무와 김 선생, 나"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3월 12일
↑↑ 구광렬 시인
ⓒ GBN 경북방송





















나무와 김 선생, 나

구광렬

머리에서 나무가 솟는다
엉겁결에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가린다
맞은 편 김 선생, 눈치 채질 못하는지
묵묵히 밥을 먹는다
솔솔 흙냄새가 난다
김 선생, 여전히 눈치를 못 채는지
단무지를 살짝 깨문다
왼손바닥 바깥으로 나무가 삐죽 가지를 내민다
난 오른손으로 구겨 넣으려 한다
눈치를 못 채는 김 선생,
나에게 입맛이 없냐고 묻는다
나무에 싹이 트기 시작한다
난 간지러워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김선생의 눈동자에 나무가 비친다
입을 오물거릴적마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난 숟가락을 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어디 아프냐고 김선생, 걱정한다
난 열려진 문으로 새들이 날아들까 불안해 한다
풍성해진 나무를 구겨 넣는다
나무는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커피 한 잔 하고 가시지...
식당 주인은 나무를 궁금해 하질 않는다
김 선생은 단무지 하나를 온전히 못 먹는다
나무는 가지를 뻗어 식당 문을 놓질 않는다
식당 주인은 -안녕히 가세요
나무를 모른 척 해 준다
밖으로 나오자, 거리의 사람들 인사를 한다
나무도 인사를 하니 내가 물구나무 서 버린다
새들이 돌아와 나무의 뿌리 속을 파고 든다
나무의 머리 위에 낙엽이 쌓이고
김 선생의 아랫도리, 나무가 되지 않는다
네온 불 켜지고 길 건너 목욕탕 간판이 밝아진다
김 선생은 가로수가 못 되고, 난 여탕으로 들어가려하고
나무는 남탕으로 들어가려한다


시 감상

소통을 하고 싶을 때 우리는 차 한 잔 하자 한다. 차의 소통이 더 깊어지면 밥 먹자고 하게 마련이다. 밥을 같이 먹을 때는 서로 깊이 공유하거나 나누고자 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함께 공유가 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고역이다. 밥에는 관심이 없고 자꾸 딴청을 부리게 되고 공유되지 않는 마음이 들킬까봐 거기에 더 마음이 쏠린다. 그럴 수록 나도 모르게 자꾸 딴 짓을 하게 되고 앞에 사람에게 들킬까봐 불안하다. 그러면 함께 식사하는 사람도 불편해 질 수 밖에 없다.

이 시에서 김 선생과 마주 앉아 식사하는 나의 소통되지 않는 마음이 나무로 표현된다, 그 나무는 김 선생에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다, 소통되지 않는 대화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나는 그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지만 그럴수록 자신도 모르게 나무가 자꾸 자라게 된다. 그 나무가 자라서 새가 날아들 정도로 너무 자랄까봐 불안해한다. 김 선생은 눈치 없이 밥맛이 없냐고 한다.

식당아주머니는 눈치 빠르게 모른 척하면서 빨리 그 자리를 뜰 수 있도록 -커피 한 잔 하고 가시지‘ 하고 등 떠밀어 준다. 김 선생도 결국 먹던 단무지를 다 먹지 못한다. 나무는 벌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거리의 사람들은 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나의 본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새들이 편안하게 나무에 돌아와 파고든다. “새들이 돌아 와”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지금 외도를 하고 있는데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내 속을 보여주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보여주듯이 내 속을 다 보여주기 위해 물구나무를 선다. 주머니 속에 것들이 다 쏟아진다.
그러는 내 마음을 알 수 없는 김 선생은 나무가 되지 못한다. 나와 같지 않은 가로수도 되지 못한다.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무 인 내가 남탕을 가야 하는데 나의 양심이랄까 마음에도 없으면서 김 선생에 대한 엉큼한 남자의 본심이랄까, 나는 여탕을 가려하는,
이 시를 보면서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외도는 달콤하지만 오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김광희)



구광렬 시인


1986년 멕시코 문예지<엘 푼토(El Punto>에 등단 ,
시집 천천히 천천히(polo a polo)>, <자해하는 원숭이(El mono dañándose a sí mismo)>(1997), <텅빈 겨울(El espejo vacío)>(2003), <병의 눈물(Lágrimas de botella)>(2007) 등여러 권의 스페인어 시집을 출간.
2003년 멕시코문학협회 특별상 수상 2007년 남미최대부수발행 문예잡지 <레비스타 어브레이스(La Revista aBRACE)>가 선정하는 ‘이달의 작가’에 선정.

국내서는 현대문학에 시 (들꽃)을 발표하며 등단.
현 '시와반시, 편집위원 활동.
시집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3월 12일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메타세쿼이아 연두` / 정서희 시인..
무산중·고등학교 전교생, 박목월 생가 찾아 체험학습..
경주시맨발걷기협회 출범식 및 제1회 선덕여왕길 벚꽃맨발걷기 성료..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정남진에서 / 황명강 시인..
경주시, 2024년 주민공동체 공모사업 비전 선포..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 5권 발간..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은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경북교육청, 몽골 총괄교육청과 R컴퓨터 나눔 협약식 가져..
경상북도의회, 2024년도 청소년의회교실 본격 시동..
하이엠케이(주) 구미 알루미늄 소재 공장 착공식 개최..
포토뉴스
시로 여는 아침
어정역 계단에 물고기가 누워 있다 숙취에 절은 움직임에 .. 
황명강 시 정남진에서.. 
메타세쿼이아 연두 .. 
최동호 교수의 정조대왕 시 읽기
정조는 1752년 임신년에 출생하여 영조 35년 1759년 기묘년 2월..
상호: GBN 경북방송 / 주소: 경북 포항시 북구 중흥로 139번길 44-3 / 대표이사: 진용숙 / 발행인 : 진용숙 / 편집인 : 황재임
mail: gbn.tv@daum.net / Tel: 054-273-3027 / Fax : 054-773-0457 / 등록번호 : 171211-00585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1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진용숙
Copyright ⓒ GBN 경북방송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