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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명 시인"명정(銘旌)*"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5월 28일
↑↑ 이여명 시인
ⓒ GBN 경북방송





명정(銘旌)*

명정이 앞서 끌었다 가슴은 헤지고 바지춤 내려앉은 두호가 곧게 세워 든 명정을 끌었다 한줄기 방천길 여는 바람에 휘어졌다 그럴 때마다 두호의 몸도 선머슴 나뭇짐처럼 비틀거렸다 마을 사람들 담 모퉁이 군데군데 모여 두호의 붉은 명정을 바라보았다 두호가 턱 멈추어서면 죽은 둥굴댁도 멈추었다

“ 작년 가을에 댕굴댁 배추 뽑았는데 지게로 무 짐 날랐는데 아직 품 안 준다 내보고 장개 와 안가노 큰다 저기 맏사위 있제 경주에서 잘 산데 둥굴댁 칠순에서 봤데”

평토 떡과 고기 마리 보자기에 싸들고 소맷자락에 콧물 훔치며 삼베옷고름 같은 길 물고 산을 내려가는 두호 가슴에 참꽃 가지가 비스듭히 누웠다 집에 있을 눈먼 엄마를 생각하는지 걸음이 빗살 같았다

이집 저집 마을 소문을 빠르게 아는 두호, 나뭇가지를 입에 꺾어 무는 날은 바람은 그 근처에서 머뭇거리고 꽃잎은 또 찍어 놓은 듯 어른거리고

*명정(銘旌): 망자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 장사 지낼 때 상여 앞에서 들고 간 후 관 우에 펴 묻는다

작가약력

경주출생
시인, 2004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경북문인협회회원, 시in동인,
시집:『말뚝』
2014년 경주문학상 수상.



시 감상

둥굴댁이 돌아가셨나 보다. 평소에도 둥굴댁 일을 잘 하던 두호가 둥굴댁 명정을 들고 상여 앞에 서서 저승길로 인도한다. 어느 동네든 조금은 부족해서 천덕꾸러기 같은 사람 한 둘이 있듯이 두호는 예삿 사람들처럼 차림이며 행동이 평정치 못하고 가슴은 헤지고 바지춤은 내려앉아 걸음조차 어설프다. 바람은 망자를 위로하듯 명정을 한번 잡아 끌어본다. 그럴 때마다 명정은 휘어지고 두호도 선머슴 나뭇짐처럼 비틀거린다.
두호는 명정을 자주 끌어 봤기 때문에 망자를 섣불리 빨리 산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 망자의 발걸음인양 몇 번이고 가기를 멈춘다. 그 때마다 망자의 상여도 뒤 돌아보듯 발걸음 멈춘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둥굴댁은 두호에게 배추 뽑고 무 짐 날라준 품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장개는 안 가노 큰다. 어설프기 때문에 아무데나 돈 쓰지 않고 장가 갈 때 같이 옵은 돈 쓰길 바라서 이다. 이제는 그 돈을 누구한테 받나, 옳치, 둥굴댁 큰사위가 부자라던데 혹시나 줄지 아나, 기대를 해 본다.
원래 초상 때 산에서 쓴 음식은 초상집에 다시 가져가는 것이 아니란다. 망자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서 일해 준 분들에게 인심을 쓰는 것처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둥굴댁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두호에게 그 평토 떡과 고기 마리가 안겨진다. 두호는 둥굴댁 생각에 눈물 콧물을 찍으며 내 달린다. 집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는지 걸음이 빗살 같다
동네에서 이집 저집 굳은 일은 다 맡아하는 두호는 마을 소문을 가장 빠르게 안다. 두호가 멋을 내듯 나뭇가지를 입에 꺾어 무는 날은 한 소식 들으려고 바람도 그 근처에서 머뭇 거리며 귀 기울이고 꽃잎마저 찍어 놓은 듯 어른거린다. (김광희 시인)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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