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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실 시인"정개밭"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8월 16일
 
↑↑ 고훈실 시인
ⓒ GBN 경북방송 





정개밭

-제주 무릉 곶자왈을 다녀 와서-

고훈실

어멍 이곳의 밤은 오랏줄이라오 망개넝굴 쥐똥나무 구지뽕나무 한데 엉켜 숨골 깊은 곳까지 동여매고 있다오 어제는 검은 돌무덩 하루 종일 치웠소 아침이면 늦은 동백 핏빛으로 혼절하고 사철 맨발은 말발굽 되던 걸 등짝에 콩짜개난처럼 들러붙는 지게, 저 혼자 밭담을 넘고 산담을 오른다오 치워도 치워도 검은 숲은 붉은 속곳을 보여주지 않으니 명년에도 몽생이 엉덩짝이나 후려 쳐야 할런지. 손바닥만한 밭뙈기 인동풀처럼 뻗어가는 꿈은 오늘도 어둡기만 하오 후들거리는 가랑이 사이로 곶자왈 땅지게를 던지고 숯검댕 내려앉은 얼굴도 고시래 던져 버리오 손발톱이 다 닳은 육박나무, 짚신도 없이 미명을 끌고 있소 던져버린 몰골을 다시 찾아 얹고 도새기만도 못한 하루 손바닥만한 하늘에 들킬까 두 손으로 가리오 조 수수 근심 없이 커가는 말간 배경은 껍질 벗겨줄 환한 때만 기다리고 있다오 꼭지 떼고 잇 사이로 질겅 씹어 보는 노을, 어멍 젖가슴에 파묻혀 바라보던 그날의 것과 겹쳐 분간이 안돼오 둥그래 당실 둥그래 당실 어멍 오돌또기 오름을 타고 울음으로 쏟아지는 날, 조여오는 질긴 오랏줄일랑 땅속 깊이 심어 버릴테오 내년이면 무심한 밭에 연두콩처럼 흐드러지려나... ... 원수같은 개망초 흐벅지게 문드러 진대도 어멍 젖살 같은 밭 한배미 눈이 부신, ※ 어멍 호꼼만 이십 서게



※정개밭- 제주 대정읍 무릉리 곶자왈에 있는 유일한 묵정밭. 과거 곶자왈은 불모지로 버
림 받았던 땅이다

※ 어멍 호꼼만 이십 서게- 어머니, 조금만 계십시오

작가약력

고훈실 시인
제주 출생
2010년 월간 시문학 신인상 등단
엔솔러지 -시를 위한 알레그로- 공저



시 감상

제주도의 방언은 동글동글해서 정겹다. 더구나 제주도가 고향이면서 객지로 떠나 사는 사람은 일상에서는 표준어 생활에 정착이 되었지만 어찌 고향의 그 정겨운 언어며 풍경을 잊을 것인가. 곶자왈의 펼쳐진 풍경이 눈에 선하다. 땅뙈기 하나 없어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하나 일궈서 곡식을 거두어 보는 것이 소원인 어머니 뜻을 받들어 개간을 하는 아들이 어머니한테 하소연을 한다.

자고나면 곶자왈 정개밭이 널부러진 망개넝굴 쥐똥나무 구지뽕나무 한데 엉켜 숨골 깊은 곳까지 동여매고 있다고, 어제도 검은 돌무더기를 하루 종일 치웠다고, 동백은 핏빛으로 피어 춘심을 흔드는데 사철 맨발은 말발굽이 되도록 지게를 지고 혼자 산의 돌 치우고 치워도 붉은 속살 보여주지 않는다고, 명년에는 망아지 힘이라도 빌려야 할지, 밭뙈기 일궈 보자던 꿈은 뻗어가는 인동 덩굴 같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다고, 후둘거리는 가랑이 사이로 지게를 던져버리고 숯검댕이 되어 밉상이 된 얼굴도 고시래 하고 던져 버린다.

다시는 그일 하지 않을 것 같이 투정을 부렸지만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손발톱이 다 닳도록 정개밭으로 나가 일구고 가꾼다. 투정 부렸던 날이 돼지만도 못하다고 자책을 하며. 잘 자란 조 수수가 수확을 바라보고 있는 가을의 저녁하늘을 바라보니 지난날 어머니 품에서 투정 부렸던 날이 그립다. 동그래 당실 장단 맞춰 노래를 부르지만 울음으로 쏟아진다. 날만 밝아 오면 자신을 동여매는 그 밤의 오랏줄은 이제 잘 일궈놓은 밭에 거름으로 묻어버릴 것이라고, 내년이면 연두콩 꽃이 흐벅지게 피겠지, 원 수 같이 밭을 덮어쓰는 개망초 쯤이야 어머니 젖살 같이 밭뙈기가 눈이 부신데,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가꾸는 오빠나 아버지들이 계셔서 꿈에도 그려 아슴아슴한 고향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김광희 시인)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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