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시인"오후 세시쯤 수도검침원이 다녀갔다"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22일
| | | ↑↑ 김성춘 시인 | ⓒ GBN 경북방송 |
오후 세시쯤 수도검침원이 다녀갔다
김성춘
나는 말 못하는 짐승처럼 누워 있었어 햇살 받으며 하얗게 2백년 동안 박제 된 돌짐승처럼
나는 누구인가 흉노족의 후손? 내가 걸어온 길 너무도 아득해 아무도 몰라 내 돌 속 흐르는 피, 아직도 뜨거워
오후 세시쯤 수도검침원이 다녀갔어
당신의 눈에 내 몸에 각인된 오오래 된 내 몸의 물결무늬가 들켰어 순간, 내 몸이 계량기의 바늘처럼 떨렸지, 파르르 당신은 내 온 몸을 수사관처럼 핥았어 귓불부터 가슴께로 엉덩이 아래로, 눈빛이 심상찮았어 당신도 계량기 바늘처럼 떨고 있었지, 파르르 순간... 당신의 입에서 아! 놀람과 탄식의 소리 새어 나왔지 수돗물 새어 나가는 것처럼 순간은 꽃처럼 붉디붉게 터졌어 나와 당신은 한통속으로 환했어
비로소 나는 2백년 만에 다시 세상에 얼굴이 빛났어 귀하고 귀한 몸의 혼으로
당신 고마웠어 나는 당신에게 큰 절하고 또 큰절 하고
잃어버렸던 신라 문무대왕 비석조각을 찾았다. 200년만이다. 비석의 상단 조각은 경주 어느 가정집 수돗가 빨랫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수도 검침원이 우연히 발견했다.(2009년 9월 경주=연합뉴스)
작가: 김성춘 시인, 부산 출생, 1974년 (심상) 첫 신인상 등단 제2회 월간문학상 동리상 수상, 제 1회 울산문학상 수상 경상남도문화상수상,제 12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제 4회 바움 문학상 수상 시집(방어진 시편), (흐르는 섬), (달을 듣다) 외 다수 현재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 국제펜클럽울산펜회장. 신간각동인, 동해남부시동인, 시와언어동인, 울산수요시포럼동인. 울산대 시창작학과 주임교수. 동리목월문학관교육국장
시감상
짐승처럼 누워있었다. 신라 30대 왕으로서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릉비의 상단 조각이 1817년 사천왕사 밭둑에 방치 되어있다가 금석학 연구의 최고봉 추사 김정희가 탁본을 뜬 이후 행방이 묘연했었다. 그 후 200년 세월이 흘러 2009년 민가에서 빨랫돌로 쓰이고 있는 것을 수도검침원이 발견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하나의 돌이었다. 그 동안 어떤 세월을 걸어왔는지 수많은 눈은 돌의 눈빛으로 스쳐갔다.
그의 눈에 뜨이는 순간 그 비석은 계량기의 바늘처럼 파르르 떨렸다. 검침원 당신도 역시 파르르 떨었을 것이다. 그렇게 첫눈에 반하는 연인처럼 전류가 흐르고 피가 통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 돌은 혼이 살아있는 비석이 되고 빛이 났다. 누구의 눈에 뜨이느냐에 따라 돌에서 비석의 이름을 얻고 세상에 알려지고 박물관에 정중히 모셔져서 귀한 문화재의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귀한 것의 발견에 대한 감동을 시로 쏟아내었다. 그런 마음으로 헐려버릴 수도 있는 고택을 매입해서 직장생활로 오래 살아온 울산을 떠나 경주 땅에 와서 그 집을 복원하여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산다.
위 시를 보면서 경주인으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도 그 문화재 속에 살면서 그 귀함을 모르고 산 적이 있다. 내가 자란 고향집의 주춧돌이며 여름부엌의 돌선반이며 죽담으로 쓴 돌들이 잘 깎이고 다듬어진 돌기둥 등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넓고 펀펀하게 다듬어진 직사각형 돌판을 빨랫돌로 썼다. 담장에는 블록 모양의 전돌이 섞여 있었고 놋그릇을 닦을 때는 옛기와를 깨고 갈아서 닦았다. 굽에 구멍이 세 개 있는 파란색 그릇을 주워서 소꿉놀이를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알고 보니 우리 집터는 신라말기로 추측되는 북명사 절터이고 그 절에 있었던 무너진 석탑의 기단석과 절의 주춧돌, 그리고 천 년 전의 전돌과 기와였던 것이다. 그 파란 색의 그릇은 청자향로가 아니었나 싶다. 참으로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담장이 무너지고 많은 석재들은 아직도 여기저기 흩어져 방치되고 있는 줄 안다. 어디 거기 뿐이랴, 경주에는 귀한 문화재들이 흔하다보니 그런지 방치되어 있는 것이 많다.
더운 피가 흐르는 시를 대하면서 모처럼 옛추억에 젖어본다. 이제는 밝은 혼으로 그 귀한 혼들을 깨우고 그 귀한 문화재들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광희시인) |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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