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시인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3일
혜화경찰서에서
송경동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 왔다 나는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 왔을 뿐이었다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톰앤톰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시지 내용을 가져 온다고 엄포 놓는다 함께 잡혔던 촛불시민은 가택수색도 했고 통장 압수 수색도 했댄다 이메일을 압수 수색하겠다고는 않는다 그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하모니카나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1년치 통화기록으로 내 머리를 재단해 보겠다고, 몇 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 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나의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고비사막 모래무지에 새겨져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 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의 몇 천M는 채증해 와 대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 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 줘야지, 이게 뭐냐고.
이령 시인의 시 읽기 (1)
| | | ↑↑ 이령 시인 | ⓒ GBN 경북방송 |
위의 시는 2010년대 노동시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일각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민중시를 상회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풍자와 해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
1-2연에서 보여주는 풍자(공권력의 탄압에 대한 풍자) 3-4연에서 보여주는 해학(아름다운 능청이라하자)
4행-일반 도로교통법(시인이 새롭게 창조한 시어-도로교통법 앞에 일반이라는 단어를 썻다) 12행-무엇을, 나는 불까(도치와 쉼표-언어의 경제성) 20행-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능청과 해학) 채증, 압수(내용,제목과 연관된 단어)
마디게, 찰지게 시를 엮어가는 송경동 시인의 이 시는 '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 줘야지, 이게 뭐냐고.' 라는 마지막 행에서 박장대소, 경천동지의 해학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호탕한 시의 스케일, 구문의 반복, 리듬, 언어의 경제성에 이르기까지 노동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령> |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5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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