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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44회)

단군신화에서 쫓겨난 호랑이 산신으로 부활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5년 03월 26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의 주제는 어떤 것이죠?
네 오늘은 호랑이 산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호랑이는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우리 전통 신앙의 대상신이기도 한 호랑이는 한민족과 상당한 인연을 맺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 가면 대웅전 뒤에 산신각 혹은 삼신각, 또는 삼성각이 있다. 이들 전각에는 산신 칠성 용왕, 산신 칠성 독성 등을 모시고 있다. 독립된 산신이든지, 삼성각의 산신이든지 늘 산신은 호랑이를 동반하고 있다. 호랑이는 늘 산신의 사자 혹은 탈것으로 등장한다. 오늘은 그 산신 호랑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산신은 언제부터 모셔졌나요?
호랑이는 한민족의 기원신화인 단군신화에 처음 등장한다. 외부에서 이주해온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터를 잡고 신정을 펼칠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고 있었다. 이들 곰과 호랑이는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그러자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기도를 하라고 한다. 곰은 3․7(21일)일을 잘 참아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 GBN 경북방송

김천 직지사 산신탱화

정사논쟁이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한단고기』는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사해 밖으로 쫓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민족의 초기 공동체인 단군조선에서 호랑이 부족은 소외되었다는 이야기다. 단군신화와 『한단고기』를 보면 호랑이는 분명이 한민족 초기공동체의 일부로 참여하긴 했지만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 밀려났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살던 조상들은 호랑이를 더 친근하게 느끼며 산신으로 숭배하며 살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반도의 고대신앙에서 곰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호랑이가 차지하는 그것이 훨씬 크다.

왜 그러한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단군할아버지가 웅녀, 그러니까 곰 어머니의 아들인데, 그렇다면 곰 신앙이 더 활발하게 신앙되었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죠. 단군할아버지가 곰 부족과 관련 된다면 분명 곰이 신성한 동물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곰이 산신 혹은 산신의 사자로 기능한 흔적을 찾기가 힘들어요.

단군신화에서는 단군왕검께서 산신이 되었다고 했는데, 한민족의 산신에는 늘 호랑이가 등장하잖아요.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국문학자인 조현설 교수는 혹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 아니고 호랑이였을지 모른다고까지 했다. 그가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조선시대 승려 설암(雪巖, 1651~1706)이 지은 기행문인 『묘향산지』의 「단군신화」이다. 거기에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白虎)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향산지』에서는 기존의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를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 조선시대까지 그런 전설이 전해져 왔을까요? 아니면 우리 고유의 신으로 산신은 존재하는데 곰신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어떤 사람이 곰을 호랑이로 바꾼 것일까요?

『동북아의 곰문화와 곰신화』에서 이정재 교수는 “국조신화에 곰과 산신인 단군이 등장되어 곰문화를 기반으로 출발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에는 완전히 호랑이문화로 바뀐 결과가 되어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다.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호랑이가 곰을 이기고 산신이 된 정황을 설명할 수 있나요?
그것은 좀 큰 틀에서 설명 할 필요가 있어요. 중국동북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잘 이해해야만 설명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된 이유는 우선 공간적인 이동과 관련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단군신화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었어요. 단군신화의 무대는 지금 중국 요령성 서부와 내몽골 동부 지역이었어요. 이 코너를 통해서 몇 번 언급했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대대적인 고고(考古) 발굴로 대단한 신석기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최근 중국에서는 이들 문명이 황제와 그 후손의 문화라고까지 주장할 정도죠. 새로운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이 등장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죠.

기원전 3500~3000년경에 형성된 후기홍산문화기에 이미 이들 지역은 전국가단계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문화를 이끈 주도 세력이 곰부족이었다는 것이죠. 중국인들이 이들 문화가 황제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곳에서 곰 부족과 관련된 토템유물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홍산문화 유적지에서는 곰 턱뼈, 흙으로 만든 곰 아래턱, 옥으로 만든 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어요.
특히 우하량 유적지에서는 여신묘가 발견되었는데, 그곳의 중앙 신전에서 곰 관련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어요. 여신묘의 주인공인 여신은 한민족의 습관과 동일한 책상다리 즉 좌식을 하고 있어요. 알다시피 중국인들은 지금도 입식문화에 익숙하잖아요. 그 여신과 함께 등장하는 곰 관련 유물들은 우리에게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를 생각하게 하죠. 웅녀 그러니까 곰 부족 할머니, 곰을 토템(조상신)으로 하는 웅녀집단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따라서 단군신화를 건국신화로 하는 우리들에게 홍산문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 GBN 경북방송
홍산문화 출토 인면형 옥 호랑이

그러네요. 단군신화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드러난 셈이네요. 그런데 단군신화와 직접 연결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잖아요?
네, 단군신화는 홍산문화가 끝나고 한 참 뒤에 일어난 하가점하층문화시기와 연결되죠. 기원전 24세기경, 그러니까 단기연호가 시작되는 기원전 2333년경에 이들 지역에서 단군왕검사회가 시작되었어요. 이 시기까지 이들 지역에 곰 토템인들이 활동했음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어요.
단군신화가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치공동체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최근에는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한국학자들이 늘고 있고, 그것에 동조하는 중국학자들도 나타나요.
홍산문화지역에선 곰 토템 관련 유물 보다는 적지만 호랑이 관련 유물도 나타나요. 이로 보아 이들 지역에는 곰 부족이 우세했고 호랑이 부족이 열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분명한 것은 이 지역에 단군신화의 무대장치가 만들어졌었다는 것이지요.

※단군신화에서 왜 호랑이 부족이 주도권을 잡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간접증거가 드러난 셈이네요?
네, 현재로선 홍산문화 지역이 단군신화의 무대로 가장 적합한 곳이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호랑이 산신 문제를 풀려면 좀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되요.

어떻게 접근하면 되죠?
우선 큰 흐름을 보아야 되요. 단군신화의 초기 무대는 요서지역, 그러니까 북경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 동북지역이었다가, 한민족을 주도했던 지도자들이 동으로 이동해서 요동반도를 거쳐 한반도로 진입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곰신앙을 그대로 가져와야 하지 않나요?
네, 한 번 질문해 볼까요? 단군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웅녀, 그러니까 곰 부족의 여인이었다고 해서 단군시대의 주 종교가 곰 산신신앙이었을까요?

글쎄요.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단군시대의 주 종교가 곰산신이 아니었나요?
네 한마디로 말해 단군왕검시대의 주 종교는 칠성신앙이었어요. 그것은 환웅이 가져온 신앙이었죠. 이 부분은 오래 전에 설명했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한반도에 살던 주민들 중 상당수가 호랑이 산신을 숭배하게 되었죠?
네 그것은 호랑이를 숭배한 사람들이 시베리아 동부지역과 그 남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인 것과 관련 있어요. 홍산문화 지역인 요서를 기점으로 해서 동쪽 지역 사람들이 호랑이를 더 많이 숭배했어요. 중국문헌인 『산해경』 대황동경에는 ‘동쪽에 있는 군자국 사람들은 범이나 호랑이를 부린다(使虎豹)’고 했다. 또한 『삼국지』「위지동이전」예(濊)전에는 “호랑이에게 제를 올리고 신으로 여긴다”고 했어요. 이는 요동지역과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숭배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들 예족이 포항시 신광면 마조리(馬助里)에서도 살았다는 유물이 나왔어요. 예족의 지도자가 쓰던 청동도장이 나왔어요(靑銅 晋率善濊伯長 印章). 그것은 중국 진(晋)나라 때 만든 것으로 이웃나라 왕이나 수장들에게 수여한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산신도에 보이는 산신의 이미지가 만주 에벵키족에게도 남아 있어요. 그들은 숲의 혼령을 모시는데, 이 숲의 혼령은 사냥에 행운을 주는 존재이다. 힝간 에벵키족은 이 혼령을 창백한 얼굴빛과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회색 수염 및 무척 긴 속눈썹을 가진 거대한 노인으로 상상했다. 그는 긴 다리에 개를 타고 다니는데, 바라라히족신화에서는 그가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 에벵키족은 우리와 동일한 퉁구스족이예요. 지금도 에벵키인들은 아리랑 쓰리랑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사용해요.

마무리 해 볼까요. 한국에서 곰산신이 아니라 호랑이 산신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요.
네, 한국의 호랑이 산신신앙의 문화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단군신화에서 단군은 아사달산의 산신이 되었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단군이 호랑이 산신과 직접 관련 있지는 않잖아요.

그렇다면 호랑이 산신은 두 가지 문화사적 흐름의 결합일 것이다. 하나는 동북지역과 한반도의 독자적인 호랑이 신앙 흐름이며, 다른 하나는 요서지역에서 태동하여 한반도로 들어온 단군조선의 산신신앙이다. 이들이 결합하여 호랑이와 산신이 결합한 호랑이 산신신앙을 낳았다. 즉 고조선계의 산신신앙과 한반도에 자생하던 호랑이 신앙이 결합하여 한국의 호랑이 산신이 탄생한 것이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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