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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리'의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기행문 -6-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의 하루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7년 08월 08일
2017년 7월 3일/여행 6일째/ 사마르칸트

아침 5시 어슴푸레한 분홍빛 기운을 파란 하늘이 들어 올리고 있다.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가 이 도시를 방문한 것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베란다에 앉아있다 사람 소리에 자리를 떠난다. 점점 주변의 빌딩과 지붕이 붉게 빛나는 태양빛을 받아서, 음영이 도드라지고 있다. 이제 고도 부하라를 떠날 시간이다. 가는 길에 시장을 보니 문이 닫혀있고 매주 월요일은 청소를 하는 날이란다.

ⓒ GBN 경북방송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간에는 직선 도로가 단 1개 뚫려있다. 그 가운데에 오늘날 화학 공업단지와 물류기지로 유명한 나보이 시가 있다. 나보이는 유명한 국민시민이며 현재 투르크 어의 문법을 만든 15세기경의 시인 알리시에르 나보이의 이름을 딴 것이며, 오늘날 대한항공의 유라시아 중심 허브로 사용되고 있는 나보이 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이미 실크로드 아카데미의 수업시간에 박문서 교수님이 K-Road에 대해 알려 주셨지만, 실제로 머나 먼 타국에서 한국기업의 로고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물류 허브로 인하여 한국이 우즈벡의 3대 교역 파트너에 속한다고 한다. 우즈벡의 주요 수출 품목에는 우라늄 레몬 등이 있다. 약간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나보이 공항은 국제공항이며 이곳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의 직항편도 탈 수 있다. 예전에는 대한항공의 가족들을 위해 나보이 공항과 호텔을 이용한 3박 5일 일정의 관광이 있었으나,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현재로서는 중지하고 있다(부하라ㅡ나보이 한진 호텔 ㅡ 사마르칸트).

현재의 나보이 시는 화학공업이 많이 발달하여 근로자의 임금이 높아서 한 6개월 나쁜 공기를 꾹 참고 일하면, 다른 도시에서 아파트 1채를 장만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나보이 근처의 주유소에 차량들이 길게 늘어져 휘발유 공급을 기다리고 있다. 이 나라는 천연가스 공급은 풍부해서 어디에서나 천연가스의 노란 관이 연결된 것은 볼 수 있지만 석유는 흔하지 않다. 또한 석유 수입량과 가격도 정부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석유가 시장에 풀리는 날이면 이렇게 줄을 쭉 선단다. 석유 암시장도 있는 데, 가격은 꼭 2배를 주어야 한다. 공식기록으로는 1리터에 2800숨이라니 약 500원 정도 한다(암시장 기준 환율). 멀리 구소련 시대에 만든 온수를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이용한 화력발전소의 굴뚝이 보인다.

나보이 공항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에는 카라반들의 숙소와 그 맞은편의 오아시스도 볼 수 있다.오아시스는 많이 부서져 방치되고 있으나, 여전히 물이 고여 있다. 한반도 인들이 7세기경 왔던 가장 먼 나라 중 기록이 확실한 것이 당시의 소그디아나 왕국이라고 한다. 소그드인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9세기에 그 전성기를 누렸고, 오늘날에도 많은 중요한 유적을 볼 수 있다. 사마르는 남성 칸트는 여성을 말하며, 이 남녀가 행복하게 사는 오아시스 도시라는 뜻에서 사마르칸트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이 수많은 유적중에 고구려인의 벽화가 나온 아프라시압 박물관이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유럽에 절름발이 티무르라고 알려진 정복자 티무르가 사랑하여 여러 가지의 푸른색 건물을 많이 지었던 티무르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도 우즈베키스탄의 제 2의 도시로, 여러 정부기관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사마르칸트의 초입인가 보다. 버스 사이로 노새가 끄는 작은 마차를 부모와 아이가 타고 세월아 내월아 도로를 지나간다. 대형버스와 노새가 같은 도로를 지난다. 샛노랗게 익은 밀밭, 키 작은 목화밭과 해바라기가 일행을 반긴다. 가이드님은 목화밭만 보면 옛날 대학시절에 목화 따던 생각이 난다고 한다. 우즈벡은 세계 5대 면화 생산국으로 방학을 이용하여 대학생들을 목화 수확에 동원한다고 한다. 보통 한 사람당 하루 50킬로의 목화를 수확해야 한다고. 이렇게 목화밭에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하다보면 허리가 부러질 듯이 아프다고 하니, 우리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는 목화밭도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겠구나 싶다. 이 일명 목화스캔들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을 참조하시라. 건너편에 창가에 빨갛게 핀 칸나는 사막의 정열을 생각나게 한다. 멀리 곧게 선 미루나무와 자귀나무, 회나무도 보인다. 미루나무는 녹색 사람이 팔다리를 움직이며 춤을 추는 듯 바람에 번쩍번쩍 잎사귀를 움직이고 있다. 나도 빠질세라 올리브 나무도 합세한다.

버스는 사마르칸트의 대학 앞을 지난다. 샘솟는 분수 뒤로 땡볕을 피해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의 모습이 흡사 한국과 같다. 사마르칸트는 역사 공부를 해 본 사람들 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고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제라프샨 강을 끼고 건설된 오아시스 도시로 알렉산더, 칭기즈칸 그리고 티무르 이 3대 정복자들이 모두 거쳐서 갔던 곳이다. 산스크리트어인 사마라는 만남의 장소를 뜻하고 있으니 오아시스의 무역도시로 그 이름을 세계사에 떨친 이 도시의 운명과 맞아 떨어진다.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이 지방을 여행할 때 이미 이 도시의 역사는 2천년을 넘어 있었다. 이후 14세기 티무르의 치세 하에서 이 도시는 인도에서 지중해까지 이르는 세계 제국의 수도로 발돋움하였으며, 그의 손자인 울룩백 시대에 문화와 과학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들 많은 유적지를 보기 위해 흥분하고 있는데, 타슈켄트로 가는 고속 열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 사마르칸트에서는 2시간 정도밖에 쓸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2시간 안에 5개의 유적지를 돌아야 한단다. 기가 막히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첫 번째 발걸음을 빨리 하여 구르 에미르에 도착한다.

↑↑ 구르 에미르
ⓒ GBN 경북방송

구르 에미르는 본래 티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을 위하여 지어졌다. 아들의 죽음에도 굳건했던 티무르는 결국 자신의 후계자인 이 손자의 비극적 죽음 이후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들보다도 손자가 더 애달픈 법이던가. 이후 자신의 고향에 묻히는 것을 단념하고, 티무르는 사랑하는 손자와 함께 구르 에미르에 같이 묻혀있다. 처음엔 무하마드 술탄, 티무르, 그리고 티무르의 정신적 스승인 셰이드 베르크가 차례로 여기 지하에 묻혔다. 부하라의 푸른 돔과는 달리 이 지역의 돔은 규칙적인 봉긋 솟아오른 주름이 잡혀있고, 보다 복잡한 문양의 타일이 붙어있다. 이 문양을 만들기 위해 각기 다른 색의 타일을 일일이 부분적으로 구워서 하나의 문양으로 맞춘다고 하니, 이 얼마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인가.

이 영묘에서는 티무르의 스승이 가장 위에 위치하며, 티무르 자신의 관은 스승의 발치에 위치하며 특이한 검게 빛나는 옥으로 되어 있다. 티무르의 시신은 소비에트 시대 학자들이 발굴한 결과, 이 대리석 석관 내의 목관에 있으며, 실제 발굴 결과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불편해서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말을 실증해 주고 있다. 또한 그의 자손인 울룩벡은 그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데, 실제 그의 시신에서 목에 긴 칼자국이 발견되어 과거에 기록된 역사가 사실임을 알려주고 있다. 아무리 모든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한 세계의 3대 침략자라고 해도 죽음은 극복할 수 없었나 보다. 빼곡하게 금칠을 하여 아름답게 꾸며진 무덤을 보다보니, 세기의 침략자라는 그의 이미지보다는 경건한 느낌이 강하다.

이 세상에서의 성취도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는 실례를 보며 욕망 추구의 허망함도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초월하는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종교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무덤들을 둘러싼 방 안에는 티무르와 그의 자손들의 초상화, 기타 여러 가지 장신구 등이 전시되고 있다. 희한하게도 티무르의 초상화는 반드시 그 눈썹을 험상궂게 꺾어서 마치 화난 사람처럼 보이게 해 놓았다. 지구의 3대 침략자라는 그의 명성에 버금가게 해 놓은 장치인가. 티무르의 무덤이 열리면 세기의 전쟁이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실제 발굴조사 후 2차 대전이 일어났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이다. 긴 굴뚝처럼 생긴 것이 있어 보니, 아래 지하층에는 가게가 있고, 여러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무덤 옆에서도 기념품을 팔다니 기발한 생각이긴 하다.

↑↑ 레기스탄 광장
ⓒ GBN 경북방송

다음은 사마르칸트의 상징 레기스탄 광장이다. 레기는 모래란 뜻으로, 사마르칸트의 마드라사가 이 광장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어서 사마르칸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레기스탄 광장은 14세기부터 이 도시의 중심 광장으로 사용되었다. 시간의 제한이 있어, 일행을 놓칠 세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왼쪽에 보이는15세기에 지어진 울룩벡 마드라사로 곧장 들어간다. 이 신학교에는 50개의 방이 있고, 100명의 학생들을 수용해서 공부를 시켰다. 20세기까지 여러 부분과 모자이크 타일들이 소실되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던 마드라사 이기도 하다. 울룩벡은 왕일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 소양을 널리 닦아, 그 스스로 이 학교에서 강의도 했다고 하니 참 바쁘신 워커홀릭이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수양을 한 지배자가 최후에는 권력욕에 찌든 아들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을 당하니, 어찌 보면 너무 바쁘셔서 가정교육에 소홀하셨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아니면 인간의 권력욕이 양심 위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중앙에 위치한 틸라카리 마드라사. 신학교가 이렇게 광장 전체를 감싸는 것도 흔치는 않은 일로 보인다. 이 마드라사는 광장 오른쪽의 시르도르 마드라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아서, 당시의 권력자가 황급히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고전양식으로 더욱 화려하게 세웠다고 한다. 이슬람은 사실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데, 오른쪽의 시르도르 마드라사는 앞부분인 파사드에 사자 모자이크가 정교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나, 지금 우리 관점으로 보기에는 재미가 있어 좋다. 사실 내 눈에는 사자라기보다는 호랑이로 보이는 데, 이 사람들은 호랑이를 본 적은 없을 테니 사자가 맞겠지. 틸라카리는 금박으로 되었다는 뜻이니, 이 신학교의 화려한 금박 장식과도 어울린다. 마드라사는 일종의 신학교인데, 이렇게 화려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도, 그 블링블링하게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 안의 돔은 깊이가 느껴지는 장식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평면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장식하여 돔처럼 보이게 한 것이라고 하니, 장인들의 솜씨가 정말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푸른색의 6각형 타일로 레이스처럼 수를 놓은 광창은 디자인의 백미를 느끼게 한다. 문제의 시르도르 마드라사는 시간 관계상 앞부분만 보고 생략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건물의 옆으로 빠져나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제는 울룩벡이 세운 천문대 터에 도착한다. 화려한 파사드가 앞을 장식하고 있고, 그 안을 보니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원형의 터널이 있다. 바로 이 깊은 터널을 이용하여 낮에도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고, 현재 남아있는 터는 기초 하부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그 기초 하부 위에 높이 40미터의 원통형 건물이 있고 각각의 위치에 관측기구가 놓여져, 천문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울룩벡이 관찰한 1년의 길이와 오늘날 우리가 정밀하게 관찰한 1년의 길이가 불과 1분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그 시대 과학기술의 수준이 현재에도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신라의 과학기술을 어떠했을까 ? 물론 경주의 첨성대는 7세기에 지어진 것이고 울룩벡의 천문대는 15세기의 것이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우리의 첨성대에 기초한 천문관찰의 기록은 너무나 적고 간단하여 아쉬움이 있다. 그의 업적도 콘스탄티노플로 도망친 제자에 의해 알려졌다고 하니, 우리 첨성대의 기록도 외부 반출이 되었다면 더 보존이 잘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울룩벡의 시대에는 종교가 과학보다 우선시 되면서 울룩벡이 시기 질투의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급히 사진을 찍은 후 버스는 다시 아프라시압 언덕을 거쳐 박물관으로 향한다. 황량하고 군데 군데 구멍이 파진 언덕이 바로 아프라시압이다. 여기에 칭기즈찬 침략 이전의 유물이 숨겨져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우연한 기회에 유물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이래로, 밑에 11개의 문화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곳이 실크로드의 오아시스로 번영을 누리고 수많은 대상들이 물품을 거래했던 바로 그 곳이었으나, 칭기즈칸의 침입으로 도시의 운명은 바뀌고 만다. 당시 마라칸다로 불렸던 이 도시는 칭기즈칸의 침입에 굳건히 버텼으나, 칸이 외부로부터 공급되는 물의 공급을 중단하자 항복하고 만다. 이후 도시는 전면적으로 파괴되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리고 마니 참으로 비극적인 운명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그 운명이 다하지는 않아서 다시 티무르의 치세하에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 정해져 다시 그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니, 역사의 변화는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다. 바로 이 아프라시압에서 나온 벽화에 옛날 한반도에서 온 사신이 그려져있다 하여 국내에서 크게 화재가 되고 연구가 된 부분이다. 이 아프라시압 박물관의 시설이 좋지 않아, 경상북도에서 와서 보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하며 가이드는 참 부끄럽고 고맙다는 반응을 보인다. 인류의 역사와 보물은 어느 한 민족이 지키기 어려운 만큼, 우리와 관련된 유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보존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멋지게 보인다. 문화외교란 이에 맞는 말이다.

ⓒ GBN 경북방송

아프라시압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 실물의 색감이 점차 흐려지고 있는 지, 기대한 만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일행들은 실제로 진품을 본다는 기대에 흥분을 보이며 사진 세례가 멈추지 않는다. 가이드님이 조우관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사신들을 가리키며 고구려에서 온 사신이며 아프라시압을 다스리는 왕이 여러 나라에서 온 사신들을 만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행들은 신라에서 온 사신이라며 응수한다.

박물관 내부에는 도자기 굽던 가마와 조로아스터교의 유물인 신성한 불을 모시는 장소 등 여러 모형이 전시되어, 과거를 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인 아후라 마즈다가 이 모든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으며, 불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신성시한다. 이때의 불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번뇌와 무지를 한 번에 불태울 수 있는 신성함을 뜻한다.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여성형의 기둥인 키리아드도 전시되어 있으나, 거의 탄화되어 원래의 우아한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마르칸트에서의 마지막 목적지 비비하눔 모스크를 보기 위해, 일행들은 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며 안간힘을 다한다. 아름다운 왕비에 반한 건축가를 설득하여 이 모스크를 빨리 완성하기 위해 단 한 번의 손키스를 허락한 왕비. 그러나 그 저주를 받아 결국에는 왕이 알게 되어 그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비비하눔에 서려 있는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 때문인지 비비하눔 모스크는 부실하여,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 사고가 많이 나고, 많은 부분이 무너져서 수리도 자주 한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껄껄 웃는 해프닝에 불과한데, 티무르는 사랑하는 왕비의 처형을 명했다고 하지, 그 사랑이란 참 얄팍하기도 하다. 아마 그 사랑은 애와 증으로 갈라지는 그런 표면적인 것이었나 보다. 아니면 티무르는 오늘날 보면 웃기지만, 왕비의 배신에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았던 것인가. 어느 편이든 상대방에 대한 포용과 신뢰라는 사랑의 본질에 비추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사건이다.

비비하눔과의 짤막한 조우를 끝내고, 우리는 고속 열차를 타기위해 기차역으로 달린다. 여기는 기차역에 들어가는 문에서도 엑스레이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테러 위험이 심각해서 인지 정치적인 문제인지 아리송하다. 헉헉거리며 기차역의 플랫폼에 털썩 주저앉아 있으니, 앞에 양팔 가득 사마르칸트의 특산품인 빵을 안고 파는 아저씨가 보인다. 비닐백 같은 것에 12개씩 들어가서 팔고 있는 데, 1개씩도 판다고 해서 1개 3000솜을 주고 사 보았다. 받고 보니 찜질팩으로 써도 될 만큼 방금 구워서 뜨끈뜨끈하다. 청정한 사마르칸트의 공기가 들어가서 유난히 맛있다고 자랑하는 빵을 뜯어 먹으니, 구수하고 옛날 맛이 난다. 이 나라 사람들도 사마르칸트를 방문하면 무조건 빵을 사 간다고 한다.

기차는 지평선이 보이는 밀밭과 올리브 나무를 거쳐 신속하게 타슈켄트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객차라는 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서 심지어 충전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올리브 나무가 보이니 이탈리아의 움브리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피곤에 곯아떨어진 우리를 싣고 철마는 말없이 달린다. 다행히도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7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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