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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상처에게 선물을 / 오토바이에 매달린 여학생(6)


이지원 기자 / pine-post@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06일
ⓒ GBN 경북방송

미지가 퇴학을 당한 후 다시 한 명이 무기정학, 세 명이 퇴학당했다. 김성한은 동료들 보기에 얼굴이 뜨거웠다. 학생들이 공공연히 하는 인기 조사에서 1위인 김성한은 얼굴에 똥물세례를 받은 기분이었다. 직원 조회를 마치고 나가는데 누군가가 빈정거렸다.

“그 반, 난장판 다 됐네. 김성한 선생, 이제 나이도 있고 마, 집에 가서 마누라 등이나 긁어주지.”

김성한이 고개를 휙 돌렸다.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젊은 남교사 셋은 눈을 내리깔았고 여교사 둘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뭐라고 따지겠는가. 그는 돌아서 교실로 향했다. 화는 교실에서 터졌다.

“학급이 왜 이 모양이야! 너희들이 애를 먹여서 도저히 선생 못 해 먹겠다. 나, 사표 낼 거니까 그리 알아라!”

그는 한바탕 입에 거품을 물더니 교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모두가 김성한 선생을 좋아했다. 특히 문제아들에게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던 선생이었다. 학급이 들끓기 시작했다. 설희가 교무실에 불려갔다.

“너도 책임이 있어. 반 분위기를 파악해서 내게 좀 정보를 주지 않고 넌 요즘 어디다 신경을 쓰는 게냐. 얘들 좀 구슬려 봐. 졸업할 때까지 사고 없이 성실하게 하자고 각오를 좀 다져 보라구! 새끼들! 내 참 돌아버리겠네.”

설희는 얼굴을 붉혔다. 아이에게 아이를 키워달라는 격이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뻔뻔한 혀로 아이들을 독려하는 일이 끔찍했지만 설희는 눈을 질끈 감고 교단 위에 섰다. 이상한 일이다. 담임 앞에서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데 설희 앞에서는 조용해진다.

“얘들아, 선생님 학교에 못 다니시겠단다. 우리 때문에 부끄럽대. 어차피 퇴직도 몇 년 안 남았으니 이번 기회에 고만 사표 낸대. 우리, 이제 좀 잘 하자. 곧 졸업이잖아. 이제 진짜 사고 치면 안 돼! 일찍 집에 들어가고 나다니지 말고, 응? 이따 종례 때 선생님 들어오시면 사표 내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리는 거야. 대성통곡하면 선생님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선생님이 떠나버리면 우리 반 얼마나 구박받겠어.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금영이가 제일 먼저 흑,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딱따구리 입으로 떠들어댔다.

“쟤 억울하게 퇴학됐다며?”
“맞아. 아저씨들 오토바이 탔는데 안 보내줬다며.”
“그러게 놀러 갔으면 버스 타고 올 일이지, 왜 오토바이를 타고 오냐 말이야.”
“차비 아끼려고 그랬겠지.”
“아냐,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보고 싶었던 거야.”
“와! 재미있겠다.”
“좀 조용히 해!”

설희가 출석부로 교탁을 내리치자 조용해졌다. 설희도 오토바이라면 할 말이 많다. 승용차를 가진 교사가 한 사람도 없는 학교에 관용차 한 대만 교장실 현관 앞에 늘 잠자듯 세워져 있었고, 바퀴달린 차라고는 고용직 직원이 끄는 손수레가 간혹 교정을 왕래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에 고등학교 미술 교사의 부인이 동일 재단 중학교로 부임했다. 부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굣길에 나타나자 말들이 무성했다. 부인은 남편을 바싹 끌어안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부웅, 언덕길을 거침없이 올라가면 학생들은 걸음을 멈추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대개의 교사는 뒤에서 수군거렸다. 김성한이 설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슨 꼴이야, 여기가 자기들 안방이야? 눈꼴 시려 못 봐 주겠어.”

“왜요, 선생님? 보기 좋잖아요.”

무엇이든 체험하지 않고는 그 매력을 완전히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바이크의 매력은 타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운전자의 등을 끌어안으면 가슴이 밀착된다. 뒤에 탄 사람이 여자라면 부드럽고 말랑한 가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토바이는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질주한다. 도로의 소실점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순간 시간이 멈추고 세계가 숨을 멎는다. 죽음도 기쁘게 맞을 환희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처음의 공포심은 사라지고 매달린 사람은 더 빨리! 더 빨리! 외치며 운전자의 등에 바싹 달라붙는다. 설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김성한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늙은이의 시기심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금영의 패들이 얼마나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을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남자들이었다.
아이 한 둘 딸린 삼십 대 중반 남자들이 같은 목적지니 태워줄까? 물었고, 모두 예, 좋아요! 했다. 여고생들은 사복을 입었다. 명문교에 다니는 자부심으로서 학교 배지까지 달았다고 했다. 그날 일요일 밤, 등에 여고생을 매달고 달리던 오토바이 네 대가 휴게소에 닿았다. 여고생들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담배를 피우던 오토바이 유부남들이 음모를 꾸몄다. 오토바이 남자 중에 상습적인 바람둥이가 섞여 있었다. 그 남자를 P라고 하자. P의 아내가 초조하게 일요일 밤을 밝히며 남편을 기다렸다. 다음날 외박을 하고 들어온 남편의 소지품을 조사했다. 수첩에 금영의 학교, 이름이 적힌 걸 발견한 아내가 P를 족쳤다. 도덕심이 결여된 P는 상습적인 바람둥이여서 늘 하는 대로 아내의 심문에 낱낱이 실토했다. P의 아내가 학교에 전화했다. 귀교의 졸업생인데 노파심에서 알려드린다. 후배들이 유부남과 그러저러하다. 생활지도를 부탁한다는 말을 들은 학생부 측에서는 선배의 각별한 전화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문제의 네 명을 불러 조사했다. 여고생들은 하나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긴 했지만, 무사히 귀가했다고 말했다. 학생부장은 간단한 벌칙을 주어 쉽게 매듭을 지었다. 문제는 P의 바람기에 지친 아내의 조바심으로 사건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부부 사이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은 점이 P와 금영 사이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분노한 P의 아내가 금영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은 그 학교 졸업생이 아니었다. 유부남 네 명이 줄줄이 학교로 연행되었다. 그날 밤 진이를 태운 오토바이만 무사히 귀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이는 무기정학을 받았다. 유유상종이라지만 진이를 태운 남자 같은 괜찮은 사람도 섞여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한 무리 안에서도 도덕심이나 양심은 개별적인 것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어느 모텔에서 하룻밤을 투숙했다는 남자들의 고백과 사죄로 금영, 향이, 혜영은 퇴학처분을 받았다. 금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나 때문에 선생님이 사표를…… 안 돼. 안 돼. 흑흑.”

책상 위에 엎드려 흐느끼는 금영을 바라보며 친구들은 저마다 착잡한 심정이었다. 금영은 김성한 선생에게 칭찬받고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찌찌리 반이었지만, 체육대회, 환경정리, 합창대회, 무용발표회 등에는 언제나 일 등을 차지했다. 선생을 헹가래 쳤던 즐거웠던 추억도 있었다. 금영이 스승의 날, 선생을 업고 강당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다른 교사들은 김성한 선생을 은근히 부러워했다. 갑자기 금영이 고개를 쳐들더니 주인의 위험에 나선 강아지처럼 왈왈 짖기 시작했다.

“우리 선생님이 왜, 왜, 나 때문에 사표를 내야 해? 아무 일 없었어. 모, 모텔에서 밤을 그, 그냥, 샌 것뿐이란 말이야.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면 알 수 있잖아. 학생부장에게 검사해보자고 말했어. 나, 난, 몸을 지켰다고.”

금영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지 설희는 감탄했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밝혀내는 검사방법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항 정자 항체 반응검사를 말하는 거였다. 항원-항체반응을 이용한 검사인데 남성의 정자가 입이나 질, 항문, 기타 점막 등을 통해 여성의 체내에 들어가면 여성의 몸은 이를 항원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항체를 생성한다. 이 항체는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평생 여성의 몸 안에 남게 된다. 쉽게 말해 처녀 식별검사라 할 수 있다. 이 검사를 여자에게 하면 정자가 몸에 흡수된 적이 있는지를 가려낼 수 있다. 이런 검사가 왜 있어야 하는지 말들이 많지만, 시체에서 성범죄의 흔적을 조사할 때도 사용되고 남자에게 검사해 불임의 원인을 밝히는 데도 사용한다. 설희는 금영을 믿고 싶었다. 물에 빠진 금영을 도와주고 싶었다. 자신도 물에 빠져 깃털이 젖은 새였다.

설희는 학생부장을 찾아갔다. 학생부장은 날렵한 몸매에 성질이 급하고 일본인처럼 뻐드렁니를 가졌다. 보기에는 말본새나 행동에 붙임성이 없고 그의 치아처럼 뻐드렁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순수하고 다정다감했다. 설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그 아이들, 용서해주면 안 되나요? 아무 일이 없었다는데요. 무슨 검사라도 해 보이겠다는데.”

“걔들이 운이 없었어. 학생이 모텔에 들어간 것으로 이미 교칙을 어겼다. 나쁜 놈들…… 졸업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세간의 여자가 가만 놔두겠냐. 학교의 명예가 추락할 거다. 처벌하지 않으면 학교와 쟤들은 또 한 번 쑤셔진 벌집 꼴이 될 게 뻔해. 제 삼의 사건이 불거지면 안 돼. 항 정자 항체 반응검사라니 말도 안 된다. 넌 학급 분위기를 가라앉혀라.”

설희는 할 수 없이 학생부실을 나왔다. 설희의 학급은 가난한 아이들이 선택한 직업 반과 부잣집 딸들이 선택한 예능 반의 혼반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구성원이었지만 소외되고 기죽은 아이들이라는 면에서 모두가 똘똘 뭉쳐 있었다.

“우리 선생님 가면 우린 어떡해.”

선생님 가면 안 돼에에, 하고 누군가 울먹이자 모두가 따라 울었다. 설희는 담임이 시킨 대로 아이들의 나태한 정신에 긴장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건 누구보다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설희도 우는 척했다. 그런데 정말 눈물이 흘러나왔다. 과장된 울음소리가 교실 밖으로 울려 퍼졌다. 옆 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고개를 기웃거리고 다른 교사가 왔다 가고 마지막에 교감이 나타났다. 교감은 열린 앞문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같잖다는 듯 노려보았다. 안경 너머로 작은 눈이 튀어나올 듯한 경멸의 눈초리였다.
“우리 선생님 사표 내면 등교 거부하자!”
아이들이 함께 외쳤다.
“그래, 등교 거부! 등교 거부!”
“실장! 실장!”
교감이 다급하게 설희를 불렀다. <7회에 계속>

이지원 기자 / pine-post@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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