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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상처에게 선물을 / 슬픈 직업(7)


이지원 기자 / pine-post@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13일
ⓒ GBN 경북방송


설희는 교감 앞으로 뛰어나갔다.

“무슨 일이냐!”
“얘들이 대형 사고를 쳤거든요. 담임선생님이 부끄러워서 사표 내신대서요.”

키가 전봇대처럼 치솟은 교감이 경멸을 담은 눈빛으로 아이들을 노려볼 때 설희는 생각했다. 젊었을 때는 멋있었을 스타일인데 왜 큰 키조차 마음에 들지 않을까? 딴에는 여학생 교육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가 아닌가? 구차한 이유를 붙이자면 전체조회 때마다 늘어놓는 순결 교육, 정조 교육이 지긋지긋해서다. 그것만인가. 그는 고사 직전의 거목 같다. 단단하고 우람한 골격으로 먼저 사람을 압도한다. 비쩍 마른 시커먼 손이 허공을 휘저으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그나마 보기에 참을 만하다. 사람의 외모로 혐오를 느끼는 것 자체가 죄악임에도 설희는 그의 외모를 악평했다. 일자로 크게 찢어진, 두툼한 입술을 벌려 여자의 순결을 외치면, 큰 구렁이가 벌린 아가리 속으로 그가 주장하는 순결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씹어 삼키는 듯했다. 그 입이 싫었다. 꼬장꼬장한 성미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또 어떻고?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 정조를 지키라고 부르짖을 때는 쇠꼬챙이로 가슴을 콕콕 찌른다. 그의 교육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희를 비롯한 여학생들은 그를 경멸했다. 순결에 대한 반발일까? 그들은 순결했지만, 순결보다 사랑을 열망하는 십대였다.
교감은 홱 몸을 돌려 삼층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마침 소란을 듣고 달려오던 김성한과 마주쳤다. 설희는 삼층 계단의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꺽다리 교감이 보통 키의 김성한을 내려다보며 삿대질했다.

“무슨 짓거리요! 얘들 선동이나 하고!”

김성한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선동이라니 교감 선생님, 오햅니다. 얘들을 좀 정신 차리게 하려고…… 제가 진짜 사표를 내는 줄 알았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얘들이 떠받들고 있던 김성한 선생이 꿈틀거리며 기는 벌레로 변했다. 설희에게 교감의 존재는 교사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찌꺼기로 보였다. 교감이 일반 교사에게 큰소리를 치는 모습에서 설희는 약자에 대한 연민부터 배웠다. 속사정은 모른다. 교감이 분노하는 것처럼 교사들에게 교육적 정열이 있는지 없는지는 설희도 알 수 없다. 다만 김성한에게 삿대질할 수 있는 교감의 직위에 막연한 의분을 느끼는 순박한 십대였다.
김성한은 난감한 듯 자꾸 웃었다. 자신은 교감의 의견과 학교 당국의 어떤 조치에도 불만이 없고 뭐든 지지하는 온건파라고 말하며 연신 손을 모으고 굽실거렸다. 이순에 이른 김성한의 입가에는 무방비의, 공격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선량한 백치의 미소가 번져 나왔다. 교감이 흠, 하고는 입맛을 다시고 자리를 떠났다. 김성한은 자신도 황당하다는 듯 두 팔을 벌려 어깨를 들어 올리고는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왔다. 이층 난간을 잡고 내려다보는 설희와 마주친 김성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인마, 선동 잘 하네. 짜식, 너무 오버했어.”

사실은 오버했다. 자신에게 불만이 욱, 치밀어 올랐던 거였다. 사건을 왕창,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설 현장에 막노동 다니는 옆집 아저씨도 욱 성미가 있었던지 이놈의 세상 마, 휘발유 뿌려서 다 불 질러 버릴까 보다! 전쟁이나 나버리든지!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다 같이 힘들게! 하고 푸념을 터뜨리는 것을 들었다. 그때는 큰일 날 소리라고 눈을 흘겼지만, 지금에야 이해할 것 같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아무리 기어오르고 비비적거려봐야 세상은 그에게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절망의 마지막 깡다구를 부리는 거였다. 설희는 자신의 절망도 그렇게 떨어져 내릴 벼랑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근데 금영이 걔들 졸업 못 하는 거예요?”
“빨리 전학 가면 졸업할 수도 있지만 받아줄 지, 곧 졸업인데. 혜영이는 집 형편도 안 좋은데. 짜식들 어쩌다가…….”

교실로 돌아오자 아이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떠들었다. 마지막 시간이라 분위기가 막장 판이다. 일본어 교사가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영미가 읽어 볼까”
“읽히지 마세요!”
“흠, 그럼 정민이 읽어볼래?”
“저는 냅둬요!”
“읽어 볼 사람?”
누군가가 불쑥 뱉었다.
“일본어 싫어요!”
선생이 일본어로 빠르게 중얼거렸다. 설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선생이 욕을 하는 것 같았다. 고3을 장악하기에 힘에 부쳤던 신입교사가 나름대로 자제력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발갛게 달아올랐던 선생의 얼굴빛이 하얗게 가라앉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면 안 되지.”

조금 전까지 울기 작전으로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니 선생이 모를 까닭이 없었다.

“내가 만만 데데하군. 나한테만 버릇없이 대들지 말고 잘 들어봐요. 여러분은 대개가 일본을 경멸하면서도 일본문화는 좋아하고 누리지 않나요? 대체 왜 일본어 공부를 거부하는 거죠?”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지만 그들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교사는 기회라는 듯 몰아세웠다.

“일본 싫다면서 일본 문화는 어떻게 향유해요? 우리 역사에는 관심 있어요? 여러분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삽니까?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일본어 싫어요! 읽히지 말아요! 냅둬요! 할 건가요? 국가에서 일본어를 교육과정에 넣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에요?”

설희는 속으로 오늘 일어 선생님이 열사가 됐군, 하며 아이들을 둘러봤다. 엎어져 자는 아이와 하품을 하는 애 둘만 빼고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일본은 이상한 나라지요. 사무라이 정신과 사쿠라 정신이 아직도 먹히는 나라지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와요. 이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을 알아야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이길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언어가 그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언어를 모르는데 그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를 어떻게 우리가 찾아내요?”

선생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학생부장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킥킥 웃었다. 학생부장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공교롭게 일어 시간에 일본인 뻐드렁니를 닮은 학생부장이 들어왔기 때문에 아이들이 웃었다는 것을 그가 어찌 알까. 그의 치아가 일본인의 뻐드렁니라 해서 별명이 japan의 JP인 줄 알기나 할까. 평소 교사직에 피해의식을 가진 그는 아이들의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의 영어 발음은 일본인의 서툰 발음이었다. 원어민 발음을 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그는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늘 경직된 분위기로 수업을 진행했다. 설희는 그의 얼굴에 숨은 열패감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모 회사 사장 딸의 방자한 태도에 폭력을 휘둘렀다. 대개의 교사는 잘 나간다는 학부형 앞에 기가 꺾였는데 그는 학부형과 오래 기 싸움을 했다. 학부형과 언성을 높이고 교실에 들어온 그가 말했다.

“선생은 절대 되지 마라. 옛날부터 사람들은 선생을 무시했어. 그 집 아들 접쟁이란다, 하며 경시했지. 접쟁이가 뭐냐, 접이란 말은 옛날 글방 학생이나 과거를 보는 유생을 가리키는 단어야. 또는 교단 조직이나 집회소를 의미하지. 쟁이는 얕잡아 부르는 말이야. 접쟁이. 접쟁이. 흥, 그뿐인 줄 알아? 에고, 살다 살다 안 되면 선생질이나 해 먹어야지, 했거든. 어떤 가게 주인이 손님이 가게를 나가고 나니, 내가 선생인 줄도 모르고 거, 선생들, 밥맛이야, 쩨쩨하게 따지기나 하고 요리 살피고 조리 살피고 쫀쫀해서 원. 애들하고 사니 완전 애가 돼. 하며 침을 뱉듯 무시하더라고. 내가 따졌지. 시비가 붙었어. 내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어. 빠진 이빨 값 물어주고 합의를 봤지. 그게 선생이라는 직업이야. 진로 선택할 때 잘 기억해 둬라.”

그만 보면 왠지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JP 학생부장이 퇴학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호명했고, 아이들이 불려 나와 복도로 먼저 나갔다. 따라 나가려던 그의 눈길이 노랑머리 공주에게 멈췄다.
“거기 노랑머리 이리 나와.”
칠공주파로 알려진 조폭 사장 딸 공주가―실제 이름도 공주였다―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왔다. 그가 점잖게 말했다.
“우리 학교, 노랑머리 허용되냐, 안 되냐.”
“내 머리 색깔 본래 노랗거든요.”
“야! 인마, 내가 바본 줄 알아? 내일 당장 깜장 물 들여와!”
공주는 들어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목소리가 컸다. 설희는 불길했다. 자신의 귀에 들리는 데 학생부장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씨팔, 이 학교, 더러워서 못 다니겠네.”
그의 손이 번개같이 튀어나왔다. 공주가 풀썩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공주는 입에 거품을 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아버지가 나이트클럽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조폭 사장이 학교에 찾아와 난동 피울 일을 생각하니, 설희는 아, JP 선생님, 또 큰일 났다싶었다. 선생이 나가려다말고 돌아서 아이들을 노려보더니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찌르며 말했다.

“이 반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아. 정신이 해이해지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어. 발발이처럼 나다니지 말고 일찍들 집에 돌아가, 알았어?”

설희는 움찔했다. 자신에게 주는 경고였다. 걸핏하면 원우의 집 근처를 배회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JP 학생부장이 경고한다 해서 원우를 잊을 수 있을까. 가슴에 뚫린 구멍, 그 틈새가 메워질 수 있을까. 예전처럼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둠의 그림자가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8회에 계속>






ⓒ GBN 경북방송

소설가 서유진
대구 출생
고등학교 교사(전)
한국소설가협회, 대구소설가협회, 경주문인협회 회원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총각선생, 짱생의 하루」
소설집《하프턴》세종나눔도서 선정
웹 장편 『스무 살이 사랑한 다섯 남자』
중편 환타지「억새꽃이 피었어요」
「배반네거리」「완벽한 풍경」「과속방지턱」등

이지원 기자 / pine-post@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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