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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휴의 양동마을 이야기.1.


김경효 기자 / 입력 : 2010년 11월 09일
이지휴의 양동마을 이야기(1)


↑↑ 아리랑TV 양동마을 취재 때 유산해설사로 출연
ⓒ GBN 경북방송



[양동마을의 문화, 그리고 한옥]

영남의 문화는 영남 특유의 풍토와 지리, 기후, 자연환경을 토대로 이상적인 생활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한 활동 중에 자연적으로 영남의 문화를 만들어 왔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교, 학문, 예술, 윤리 등이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발달했다.

특히 영남은 고려 말 야은(冶隱) 길재(吉再)로부터 유학이 발달함으로 인해 유교적인 문화가 발달 되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영남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안동의 하회마을과 경주의 양동마을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양동마을을 예를 들어 영남의 생활문화를 거슬러 보려고 한다.

↑↑ 양동마을 전체전경
ⓒ GBN 경북방송



[조선시대의 반촌을 형성할 수 있는 지리적인 조건].


택리지를 지은 이중환 선생은 복거총론에서 사대부로서 거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지리(地利),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지리는 풍수지리의 지리이며,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로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았고,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야세(野勢), 산형(山形), 토색(土色), 수리(水利), 조산(조산), 조수(조수)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생리(生利) 는 토지의 비옥도와 수운, 교역 등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터를 잡을 때는 인심이 후하고 세상풍속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야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후손들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고 했으며, 산수가 아름다워야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므로 사대부가 살만한 곳은 산수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다.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역수지형(逆水地形)이다. 역수지형은 마을이 번창하고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경주에서 흘러오는 형산강은 마을을 향하여 물이 역수(逆水)를 하고 있고, 물의 흐름 또한 완만하여 사람의 심성을 급하거나 박하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3곳에서 지류(支流)가 합해 지므로 관계시설이 좋지 않던 시대에 농업용수 확보가 용이 했다. 물이 흘러 들어온다는 것은 복을 가지고 오지만 물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면 복이 떠내려간다고 했는데, 양동마을은 기계천과 형산강이 합류해 영일만으로 흘러가기 전에 방간산이 가로막아 흘러가는 물이 보이지 않게 자연적으로 막아 주고 있다.

복(福)은 퇴적물이다. 역수지형은 퇴적물을 마을 앞으로 항상 옮겨 쌓아준다.

강이 3곳에서 합류하므로 홍수가 나면 더 많은 퇴적물을 마을 앞으로 날라주었고, 산이 강물의 흐름을 보이지 않게 막아 주었다.

이것은 강폭이 갑자기 좁아짐으로 홍수가 범람하더라도 물이 회오리치면서 퇴적물을 최대한 떨어뜨려 놓고 물이 흘러감으로 지리학적으로 포항, 경주, 울산은 형산강지구대로 협곡의 지형이나,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의해 경상북도에서 가장 넓은 안강평야가 생성되었다.

↑↑ 안강평야
ⓒ GBN 경북방송



퇴적물로 이루어진 영양이 풍부한 토질은 일차산업인 농업생산량을 풍부하게 해 풍수지리적으로 영남의 3대 길지 중에 하나로 사람이 살기 가장 마땅한 조건을 구비하였다.

또 해방 전까지 인근 3km거리의 국당리에 연화장(조선의 3대시장)이 있었으며, 마을 입구 관가정 앞까지 물길이 깊어 거룻배가 들어올 수 있었다.

↑↑ 관가정 전경
ⓒ GBN 경북방송


농, 수산물의 유통이 활발했을 뿐 아니라, 조선의 향촌사회(鄕村社會)를 이끌어가는 양대 주체인 지방관과 사족은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읍성과는 조금 거리를 둔 곳에 반촌을 형성하였는데, 양동마을은 경주읍성에서 40리 거리에 위치해 이러한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생리는 이런 조건에서 인간의 삶을 궁색하지 않고 경제적인 여유로움 속에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자연의 조건을 궁리하여 이용하는 방법이다.

남에게 추하지 않고 오직 이상적인 가치관을 이끌어야 하는 사대부들은 이런 조건에서 한 마을을 경영하므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초를 다듬었을 것이다.

↑↑ 양동마을 길
ⓒ GBN 경북방송


인근 마을과 이곳의 향촌사회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과 풍습, 안강들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산물, 영일만에서 들어오는 각종수산물 등으로 인심이 비교적 후하고 순해 송사나 범죄가 비교적 다른 곳보다는 적었다.

산수 또한 박하지 않고 순한 육산(肉山)으로 형성되었고, 산세가 완만한 구릉을 유지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순박하게 가질 수 있는 지형이라 무(武)보다는 문(文)을 숭상하는 기풍을 이루었다.

양동마을의 진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으로부터 네 갈래로 뻗은 산등성이가 물(勿)형 지형을 이루고 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편안하게 누워있는 자세의 지형이기 때문에 마을은 대대로 평안하였고, 시끄러운 일이 별로 없었다.

↑↑ 하늘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 GBN 경북방송


그러나 우연한 일치인지, 일제 강점기에 마을 앞에 직선으로 철로가 놓이면서 마치 혈(血)자 형의 지형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짐으로 인하여 해방 후 좌우익의 충돌로 5,1사건이 터졌고, 6.25동란 때 안강, 포항 전투의 격전지가 되어 많은 피를 흘린 곳이기도 하다.

이 네 갈래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아랫마을, 물봉골, 내곡(안골), 거림골, 분통골, 장태골, 갈구덕으로 나누어 보일 듯 말 듯 마을을 형성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반가가 있고 낮은 곳에 가랍집(하배집)이 있어서 신분의 위계질서를 나타났다.

특히 미세지형(微細地形)이라 높은 곳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낮은 곳은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골바람이 불어 춥기 때문에 반가(班家)가 지리적인 이점을 먼저 취했다.

勿자형 지형은 행주형(行舟形)이라 마을 안에 우물을 함부로 파지 못하게 하였다, 다만 지하수가 모이는 곳, 6곳에 우물을 파, 고인 물을 퍼내게 하여 배가 순조롭게 항해하듯이 동세(洞勢)가 막힘이 없이 발전도록 염원하였다

동양에는 보편적으로 취락을 형성할 수 있는 지형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하나, 우리나라의 반촌(班村)은 반드시 3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촬영을 하는 모습
ⓒ GBN 경북방송


첫째.
앞에는 물, 뒤에는 산으로 된 배산임수의 지형이어야 하고,

둘째.
전면은 낮고 뒤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지형, 즉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지형을 택한다.

평지 마을은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홍수가 나면 바로 고립되어 수해를 피할 수 없고, 태풍이 불어도 의지할 데가 없으며, 전시나 난세 때는 적들이 들어오는 통로가 개방되어 감시하기가 어렵고 난을 피하기 위한 엄폐물도 없다.

전저후고의 마을은 홍수가 나면 뒤로 피할 영역이 생기고, 옛날 말에 “언덕이 있으면 비빌 데가 있다”고 한 것처럼, 의지 할 곳이 있고, 언덕이 있어 숨을 곳도 생긴다.

산불이 나더라도 발화지점에서 마을 아래로 번지지 않고 불길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화재의 피해가 적어서 이런 지형을 택하였다.

셋째
입구는 좁고 뒤는 넓은 전협후광(前狹後廣)의 지형을 택하였다, 옛말에 “우리마을은 소쿠리형 지형이라 복이 들어오면 빠지지 않는다” 했는데, 입구가 좁으면 태풍이 불어오거나 홍수가 범람해 물이 들어오더라도 피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고 안으로 들어 갈수록 넓게 퍼지게 되므로 피해가 적다.

산 밑 개활지에 있는 마을은 적들이 들어오는 통로가 개방된 편이라 감시하기가 어렵지만 전협후광의 지형은 입구가 좁게 제한되어 있어서 감시하기가 용이한 지형이며, 침략군이나 반란군, 화적들은 전략적으로 대도시나, 큰 마을 , 요새 등을 먼저 점령한다.

그런 곳을 선점 해야 전략적으로 우세한 형세, 즉 저항세력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 향단 전경
ⓒ GBN 경북방송


전협후광의 마을은 안쪽은 넓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더라도 외부에서 보면 일부분만 보여 아주 작은 마을처럼 보이므로 적들이 간과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경주읍성은 피해가 많았으나 이 양동마을은 많은 인구가 있었지만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이 이런 지형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반촌의 대다수는 배산임수와 전저후고의 지형은 구비되었다.

그러나 전협후광의 지형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때문에 어떤 시골마을에 들어가다 보면 입구 반대편에 큰 돌무더기가, 흙무더기, 또는 큰 숲이나 노거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는 비보(裨補)로 배치한 것이다.

이 모든 지형적인 조건을 가진 곳이 양동마을이다.


↑↑ 이지휴 선생
ⓒ GBN 경북방송



[이지휴 선생의 이력]


주소.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43번지

1949년 양동마을 생
국민은행 22년 근무
Sun trading L.T.D 중역으로 1992~98년 Cambodia 근무.

2004년 현대시문학 자매지 현대인 등단
현 경북문협 회원.

현 양동마을 문화관광해설사(경주지역)로 봉사.
전통주 송곡주 제조 기능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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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효 기자 / 입력 : 2010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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