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휴의 양동마을 이야기 3
[한옥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김경효 기자 / 입력 : 2010년 11월 23일
이지휴의 양동마을 이야기 3
한옥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우리의 선조들은 집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대처럼 재산증식(財産增殖)의 수단으로 생각지 않고 내 몸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을 팔아 이득을 남기면 내 몸을 팔아 이득을 남기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집을 팔아 재산을 증식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  | | | ↑↑ 양동마을의 이지휴 선생 | | ⓒ GBN 경북방송 | |
집터를 정할 때부터 완성할 때까지 자연과 동화되게 하고 그 순리에 따르며 그 속에서 사람의 윤리와 예절, 의례, 사고력 등을 배려해 면밀하게 분석한 집을 설계 후 건축했다.
그 지방의 풍토, 기후, 산수, 교통 등을 감안한 집터를 선조들은 어떻게 정했을까?
풍우(風雨)와 한서(寒暑)와 맹수및 적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지만, 농경사회가 발달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집의 용도는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여러 가지 필요조건에 의해 집의 구조와 형태는 지역마다 달라진다.
우리의 선조들은 삶의 터전에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윤리와, 사고력과 철학, 예절, 가족 간의 질서와 친목을 생각하며 집터를 정했다.
선조들이 집터를 정하는 방법은 대략 5가지로 나누어진다.
|  | | | ↑↑ 수졸당 뒷 동산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전경 | | ⓒ GBN 경북방송 | |
1.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적용했다. 풍수는 사람이 정착생활(定着生活)하기 시작한 후부터 오랜 세월동안 축적(蓄積)된 경험과학(經驗科學)이다. 옛 표현 중에 “양지 바르다”는 표현이 있다. 음양의 이론으로 보면 사자(死者)는 음(陰)지에 머무르기 때문에 양지(陽地)에 음택(陰宅)을 지어야 음양이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의 삶은 활동적으로 이루어진다. 활동적(活動的)인 것은 양(陽)의 성격이다. 따라서 마을은 양기인 햇빛이 조금 늦게 들어오는 산 아래, 즉 음양의 중간점에 이루어 음양의 균형점을 기준으로 형성하도록 했다.
그 안에서 수맥(水脈), 바라보는 지형(地形), 토질(土質)의 성분(性分) 등,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의 의학적인 요소도 적응 되어야 했다. 또 이 자리에 자손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을지, 수맥이 지하에 흐르지 않는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터인지, 위대한 인물이 출생할 수 있는지 등을 감안하여 터를 잡았다.
2. 금지하는 것, 기피할 것, 어긋나지 않을 것, 등을 감안했다. 금지한다는 것은 법으로 정한 것도 있지만 금기시하는 것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민간인은 집을 100칸(間)이하로 지을 것, 영조 정조 이전 까지는 노비를 제외한 백성들은 4각기둥(특히 양반)을 사용할 것,
정남향으로 집을 짓지 않을 것, 왕과 황제는 정남으로 좌정(坐定)하여 국사(國事)를 본다. 사대부가 정남으로 집을 짓고 가사를 보면 부도덕하거나 불경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 ↑↑ 향단 | | ⓒ GBN 경북방송 | |
주춧돌은 자연석을 사용할 것, 자연석을 초석으로 하다 보면 돌에 굴곡이 있어 기둥의 밑면을 자연석의 굴곡과 똑같이 파주어야 기둥이 고정되기 때문에 그렝이기법(파낸다는 뜻)이 도입되었다.
기둥의 높이를 제한하는 것 등이다.
대대로 물려줄 집을 나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가문의 자손들이 대대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가문의 안녕과 부흥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오행(五行)도 도입된다. 가문(家門)의 상생(相生)과 연속성을 이루어야 했고 내 성(姓)에도 오행이 있고 그 오행을 어긋나지 않게 해야 집안이 편안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로 시골에 가면 5일장이 있는데 그 옆 지방의 장날과 겹치지 않는다. 지방민과 상인(특히 보부상)은 장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고 파는 것에도 액(厄)이 있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이유중 하나는 오고 가는 길에 치안이 확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장날을 정할 때는 각지방을 대표하는 주산(主山)을 기준(基準)으로 했다. 시장이 열리는 각 고을에서 그 주산을 바라보면 모양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모양에 따라 수성(水性)의 산이면 수(水)에 해당하는 양의 수(數) 1,3,5,7,9중에서 선택해 장날을 정하고 5일 후의 음(陰)의 수(數)를 장날로 정했다..
화성(火性)의 산이면 화(火)에 대한 양수(陽數)를 장날로 정하고 또 5일 후의 음수(陰數)를 장날로 정하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무리 없이 순행된다. 장날은 관청에서 날짜를 정(定)한 것이 아니라 보부상과 지방민의 약속이다. 이렇게 장날을 정하므로 그 지방의 장날은 중복되지 않고 돌아가면서 장이 선다,
다시 돌아와 집이란 것은 대물림을 해야 했기에 방향을 정할 때도 내 사주(四柱)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내 성(姓)을 기준으로 방향을 정했다. 내 성(姓)에도 오행이 있다고 믿었고 그 오행과 방향이 어긋나면 그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았다.
그 방향이 오행에 맞더라도 그 쪽에 기피하거나 꺼려할 것들이 있으면 역시 피해야 했다. 공동묘지나 화장터, 또는 음산한 기운이 든다면 그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옳지 않은 일 이었다.
|  | | | ↑↑ 관가정 | | ⓒ GBN 경북방송 | |
3. 실생활에 영향을 주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햇빛이 계절에 따라 어느 쪽으로부터 들어와 어느 쪽으로 지는지 등을 면밀히 관찰해 설계를 했다.
계절에 따라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과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양을 면밀하게 분석해 비바람이 몰아칠 때 방과 마루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해야 했고 햇빛이 받아들여 집안이 어둡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 ↑↑ 향단과 관가정 중간지점에서 바라본 문필봉 | | ⓒ GBN 경북방송 | |
4. 한옥은 기준점은 안대(眼臺)이다. 한옥의 대문이나 사랑 대청에서 정면을 보면 반드시 정면에 보이는 지형지물(地形之物)있다. 그 지형지물을 안대라고 한다.
안대의 조건은 영속성(永續性)과 불변성(不變性)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 지형지물이 변하거나 없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형지물은 한정(限定) 되어 있다. 산봉우리, 강변의 물웅덩이가 아닌 자연호수, 사람이 어쩔 수 없는 큰 바위 등이다.
매일 바라보는 안대는 사람의 심성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 지형의 기(氣)를 자기도 모르게 받기 때문이다. 붓끝처럼 생긴 산을 문필봉(文筆峰)또는 문장봉(文章峰)이라 한다. 후손들이 학자(學者)가 되기를 원한다면 문필봉을 안대로 잡아 매일 그 봉우리를 보고 그 기운을 받고, 바라보면서 학자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게 하여 학자가 배출되도록 했다.
말안장 같이 생긴 쌍봉은 안장봉(鞍裝峰)이라 한다. 벼슬하는 사람은 말을 탄다. 후손들이 벼슬하기를 원한다면 안장봉을 안대로 삼아 그 기운을 받고 또 벼슬을 해야 되겠다는 집념을 가져 벼슬길에 오르도록 했다. 자손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 노적가리처럼 생긴 노적봉을 안대로 잡아 후손들 중에 부자가 되게 하였다.
이렇게 후손들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 것에 따라 지형지물을 달리 했다. 양동마을은 주산과 조산이 모두 문필봉과 문장봉이다. 또 마을 안에서 산을 보면 바위하나 보이지 않는 육산(肉山)이다. 그 지기(地氣)의 힘을 받아 조선시대 이후로 많은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
5 집 주변의 산수(山水)와 풍경(風景)이 수려(秀麗)해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보게 되면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워질 뿐 아니라 또 아름다음을 추구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손들이 후덕(厚德)하고 아름다운 심신(心身)을 가진 빼어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
집 주변이 풍광이 아름답고 산수가 맑고 아름다우면 자연적으로 아름답고 맑은 모습을 매일 보게 된다. 매일 이러한 풍경을 보다 보면 자연히 자신의 마음도 몸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맑게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런 심신을 가지게 되면 대중으로부터 존경 받는 빼어난 인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맑은 풍경을 차경(借景)해야 했다.
이상과 같이 간단하게 집터를 잡는 것을 서술했지만 그 과정은 상상할 수 없을 많은 조건들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완벽한 이런 터는 없다.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이나 위에 서술한 것에 합당하지 못하면 수목이나 구조물로 모자라고 어긋나는 것을 보충하거나 막아야 한다.
|  | | | ↑↑ 심수정 뒷 동산 | | ⓒ GBN 경북방송 | |
바로 비보수(裨補樹)나 비보물(裨補物)을 심거나 배치했다. 예를 들면 동쪽에 복승나무나 버드나무, 남쪽에 매화나무나 대추나무, 서쪽에 치자나 느릅나무, 북쪽에 살구나무나 벚나무를 심어 좌청룡, 우백호 등의 비보를 한다.
|  | | | ⓒ GBN 경북방송 | |
이지휴 선생의 이력
주소.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43번지 1949년 생 국민은행 22년 근무 Sun trading L.T.D 중역으로 1992~98년 Cambodia 근무. 2004년 현대시문학 자매지 현대인 등단 현 문화관광해설사(경주지역) 현 경북문협 회원 본 내용의 저작권은 필자에 있습니다. |
김경효 기자 /  입력 : 2010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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