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 교수 음악산책(22)-애국가와 스코틀랜드 민요「작별의 노래」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1년 02월 14일
|  | | | ↑↑ 음악가 안종배 교수 | | ⓒ GBN 경북방송 | |
몇 년 전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의 첫 악보가 발견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우리 나라에서 애국가를 국가로 제정한 경위를 자세하게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해방 직후 스코틀랜드 민요「작별의 노래(Auld Lang Syne)」를 애국가로 불렀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필자가 경주중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이하였다. 혼란이 극심했던 때라서 경주중학교 학생들이 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이 되었으며, 당시 경주역전에 위치한 계림초등학교에 모인 시민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쳤으며, 그때 스코틀랜드 민요「작별의 노래」에 애국가 가사를 붙여서 불렀던 기억이 지금도 역력하다. 우리 나라에서 스코틑랜드 민요「작별의 노래」가 애국가로 불려진 내력은 이러하다. 18세기 말, 런던 대영박물관에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버언즈(Robert Burns, 1759~1796)로부터 노래 악보와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가 전달되었다.
‘이 곡은 오랜 옛날의 고요(古謠)로, 지금까지 인쇄된 일도 없고, 악보로 기록된 일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노인이 부르는 걸 듣고 처음으로 곡조를 기록한 것이며, 이 곡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가사에도 잘 어울리는 멜로디입니다’
시인 버언즈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빈곤 속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를 읽고, 1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대성(大成)을 하였다. 그는 혁명사상의 선구자로, 모순에 찬 당시의 사회․교회․문화전반에 걸쳐 예리한 필치로 비평을 했다. 그러면서 열정적인 향토애로 스코틀랜드 농민과 서민의 순진하고 소박한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에, 애국시인으로 존경을 받았다.「작별의 노래」는 그후 버언즈의 말대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가사에도 잘 어울리는 멜로디로 세계에 널리 퍼져 나갔다.
이 노래는 서양음악에 별로 소양이 없는 동양사람에게도 쉽게 불려질 수 있다. 이 노래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까닭은 멜로디가「도․래․미․솔․라」다섯 음에 전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민요도 음구조(音構造)는 좀 다르지만 역시 5음 음계로 되어있어서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부르기 또한 쉽다.
잉글랜드와 오랜 세월의 분쟁에서 스코틀랜드인은 런던에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였다. 그들은 여가만 나면 고향사람을 찾아가서 스카치를 마시면서 향토애를 다졌다. 섣달 그믐날에는 (聖) 포올 교회 광장에 모여 제야(除夜)의 종소리와 함께 향수를 달래는 풍습이 생겨서「작별의 노래」는 명곡으로 넓게 알려졌다. 일제 때 우리의 독립투사들도 만주․상하이 등지에서「작별의 노래」에 애국가 가사를 부쳐 애창을 했으며, 이것이 해방직후 까지 계속을 한 것이다.
안종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1. 2. 14. ahnjbe@yahoo.co.kr |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1년 0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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