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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교육/청소년 > 최해진 교수 최부자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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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최해진 교수 최부자집 이야기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1년 03월 01일
|  | | | ↑↑ 최해진 교수 | | ⓒ GBN 경북방송 | |
프롤로그
경주 지방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조천(교촌) 최부자가 눈알로(눈 아래로) 보인다’, 또는 ‘솔씨가 날아가도 조천(교촌)최부잣집 갓(산의 경상도 말)이라면 앉는다’. 앞의 말은 아마도 최부자의 부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라 추측되고 뒤의 속담은 손님 접대를 잘하고 인심이 좋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최부잣집 며느리가 되려면 용꿈을 세 번 꾸어야 된다’라고 할 정도로 한 집안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지방 사람들의 속담으로 전해 올 정도로 최부잣집의 명성은 높았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수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경주 최부자처럼 500년이나 오랜 기간 내내 변함없이 한결같이 주위의 존경과 칭송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경주 최부자가 장기적으로 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다른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영 철학과 그 철학에 바탕한 독특한 가족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과 결탁해서 이권을 가로채는 일이 없었고 그 부를 남용하고 오용하지도 않았다.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이루었으며 그 부를 지극히 정당하고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또한 누대로 내려오는 독특한 가훈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하였다. 시대를 앞선 가훈에 내재하는 철학과 사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부를 어떻게 만들고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교훈을 주고 있다.
부자에 대한 의미는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부자가 가지는 의미에는 단순하게 유형 자산을 다량 소유하고 있다는 뜻만이 아니고 무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 어떤 의미로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진정한 참 부자 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경주 최부자 가문이라 할 수 있다.
경주 최부자란 말은 현재의 가암파 또는 정무공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종갓집(세칭 배반파 즉, 정무공의 7촌숙 사헌부 감찰 최경천)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종갓집 부자 내력 100여년을 합하면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
종갓집의 재물은 임진왜란 중에 상당 부분이 군자금으로 소진된 데다 그 후 남은 재산도 자손들 사이에 분재(分財)되어 쇠잔해지고 말았다. 그 반면에 가암파 쪽에서는 후대로 갈수록 재산이 점차 늘어나고 이를 잘 관리하였다. 후일 문파 최준에 이르러 많은 재산이 민족독립운동의 독립 자금으로 기탁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대학교 설립에 전 재산이 출연되었기 때문에 명성이 더욱 자자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부자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자료는 드물다. 신뢰할만한 문헌적자료로는 최부자 후손이 적은 ‘교동의 얼’과 필자가 구전과 후손의 증언을 토대로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쓴 세 편의 논문,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였던 전진문씨가 쓴 한 편의 논문, 원광대학교 조용언 교수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최효찬씨의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기타 단편적으로 쓰여진 신문, 방송 등 언론 기관의 취재 기록 등이 전부이다.
최부자 이야기는 신비한 비밀도 아니고 재미있는 전설도 아니다. 온 가족 구성원(노비 포함)이 사람 사는 도리를 잘 지킨 살아있는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참다운 선비 이야기이다.
참다운 선비가 조선 500년 동안 이 땅에 살면서 어렵게 사는 우리 이웃들을 어떻게 돌보아 주었으며 나라가 어려울 때는 어떻게 했는가를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선비가 살아가는 선비정신 또는 진정한 양반이 살아가는 양반정신은 조선 500년을 지탱해온 우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이다. 여기 선비도를 소리 없이 실천한 산 증표가 있다. 우리나라를 부강하고 복되게 만드는 가치 철학이 이처럼 당당하게 존재하면서 실천된 훌륭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최부자 이야기는 단순한 한 가문의 흥미꺼리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의 시대 정신과 철학과 민중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역사 이야기이며 삶의 지표에 대한 교훈으로 우리 앞에 자리한다.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제공해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정확한 기억을 되살려 증언해주신 崔龍煥 씨(전 경주문화원장), 崔鍾煥 씨(전 경주시의원), 崔聖煥 씨, 종손 崔埰亮 씨(전 교사), 경주 교동의 崔梗 씨, 배반파계인 경주 천북의 崔海景 씨, 배반의 崔鍾植 씨(전 경주 향교전례), 대구의 崔長植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수많은 증언과 사실 확인을 하면서 오류를 지적하는데 남다른 수고를 하신 가암파계 주손(冑孫) 崔炎씨와 원고 정리와 증언 기록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內子와 豚兒 盛林이 그리고 동의대학교 경영학과 3년 金恩姬 양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1년 03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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