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 교수 음악산책(26)- 영화 쇼팽「이별의 노래」스토리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1년 03월 21일
|  | | | ↑↑ 음악가 안종배 교수 | | ⓒ GBN 경북방송 | |
해방 직후 쇼팽의 일생을 다룬 프랑스의 픽션 영화「이별의 노래」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1830년 폴란드가 러시아의 압정에 신음하고 있었다. 용감한 폴란드의 청년들은 궐기를 했다.
20세의 쇼팽도 피아노를 버리고 총을 들고 독립전쟁대열에 참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아낀 은사 요제프 엘스너 바르샤바 음악원 원장은 “천직인 음악의 세계에서 이름을 남기는 것도 조국을 위하는 길”이라고 설득해서 그를 프랑스 파리로 가게 한다.
바르샤바를 떠나는 고별 연주회에서 첫 사랑인 소프라노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그녀에게 받친 「이별의 노래」를 연주한다. 쇼팽이 작곡한 12편의 연습곡 작품 10번의 세 번째 곡에 영화회사가 다음과 같은 가사를 부쳐서 만든 주제곡이 바로 「이별의 노래」이다.
- 나의 기쁜 마음/ 그대에게 바치려 하는 이 한 노래를 들으소서/ 그대를 위한 노래 아 - 정답게 나의 가슴 불타올라/ 나의 순정을 받아 주소서/ 그리운 님/ 떠나가면 나만 홀로 괴로움을 어이하리/ 언제 다시 만나려나. 아 - / 그리운 님/ 나의 순정을/ 잊지 마소서 잊지 마소서 -
파리로 나간 폴란드의 시골뜨기 쇼팽은 당시 피아노의 거인 리스트와 교우를 하게 되고, 파리 사교계의 귀공자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면서, 사교계의 여왕격인 남장(男裝) 여류작가 조르주 쌍드와 열렬한 사랑을 하게 된다.
바르샤바의 첫사랑 콘스탄치아는 쇼팽을 못 잊어 파리로 뒤쫓아가지만 이미 쇼팽은 유명한 음악가로 출세를 해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사교계의 여왕 조르주 쌍드와 깊은 사랑에 빠진 사실을 그녀는 알게 된다. 그래서 첫사랑인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연주하는「이별의 노래」를 들으면서 쓸쓸히 바르샤바로 되돌아간다 - 는 것이 이 영화의 스토리이다.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 처음 상연될 때만 해도 요즈음과 달라서 젊은이들이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를 숭상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매우 좋아했고, 특히 영화 중에서 주제곡으로 불려지는 「이별의 노래」는 큰 히트를 한 것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러시아의 피아노 대가인 안톤 루빈슈타인은 쇼팽을 ‘피아노의 시인․피아노의 마음․피아노의 혼’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말은 쇼팽만큼 피아노에 인간의 영혼을 불어넣은 작곡가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쇼팽을 지금도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1. 3. 21. ahnjbe@yahoo.co.kr |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1년 0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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