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GBN 경북방송 |
|
어느덧 45년 세월이 흘러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45년간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기억해준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문교부에서의 정책개발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한 20년, 대학에서의 수업과 연구 활동 등을 통해
교직생활 25년, 반세기 가까운 세월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하고 이제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쉽지만 지난 2월 29일 집에서 가족들과 조촐한 퇴임식을 가졌습니다.
딸 아이가 읽어 준 퇴임 축하 손 편지에 저희 가족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편지는
저의 마음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아내의 축하 꽃다발에 저는 또 한 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스무살의 까까머리 젊음이 어느덧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 이런 감동과 기쁨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꿈만 같습니다.
생애 첫 근무지로 고령군 교육청으로 발령을 받은 저는 1975년 2월 24일 월요일 아침 대구 서부 정류장에서
고령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고령 시외터미널에 내린 순간 대구 사대부고 은사이신 고 김태식 교장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전 인사 드렸죠. 선생님께서는 “자네 이 아침에 어딜 가는가?” “예, 오늘 고령군 교육청으로 발령받아 첫 출근합니다.”
이 말에 교장 선생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래? 나하고 같이 근무하게 됐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저의 첫 직장인 고령군교육청 기관장이신 교육장님이셨습니다.
이후 저는 직장인으로 보다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지내면서 숙직 때마다 사택에서 기관장님과 식사를 같이하는 행운을 누렸지요.
저의 20살 청춘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45년 동안의 사연은 얼마나 많으며, 하고 싶은 말들은 얼마나 가슴속에 절절히 맺혀 있겠습니까?
문교부 학생군사교육관실 근무때입니다. 1984년 12월 어느 날 저녁 8시경 안양 단칸방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부엌문으로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녁을 먹다가 수저를 놓고 방문을 열어보니 낮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사무실에 찾아 왔던 민원인 모자(母子)였습니다.
하얀 눈을 맞으며 두 사람은 밀감 1상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낮에 민원을 잘 해결해 주어
고마운 마음에 집에 그냥 갈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문교부 당직실에 전화해서 주소를 확인한 후 하루 종일 저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방으로 들어가자는 말도 못하고 엉거주춤 허둥댄 기억이 36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이 선합니다.
그 때 저는 불편한 제도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민 편의 위주로 정책을 확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법령 개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결과 1986년 12월에 공무원창안상으로
공무원으로서 최연소(31세) 대통령표창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나머지는 마음속에 담아두려 합니다.
<걸어 온 길>
|
 |
|
| ⓒ GBN 경북방송 |
| 살아 온 길 6가지 보람
1. 공무원 제안규정에 의한 창안상 동상(대통령 표창) 수상(1986) 2. 국내 최초 인터넷 원서접수 시스템 연구 개발(1995) 3. 국내 최초 산학협동 국제화 전략 연구 개발(1996) 4. 국내 최초 사립대학 복식부기 회계실무 지침서 연구 개발(1999) 5. 국내 최초 희망도서 원스톱 대출 서비스 시스템 연구 개발(2008) 6. 사회봉사(IMF 당시 성금기탁 ; 1998년, 1999년)
호산대 한문식 교수는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분이다.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라고 마음의 말을 전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