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 교수 음악산책(31)-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교가와 윤이상․윤경열 선생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1년 04월 25일
|  | | | ↑↑ 음악가 안종배 교수 | | ⓒ GBN 경북방송 | |
필자가 1952년부터 경주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할 때, 언제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애쓰시던 윤경열 선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1953년 문총경주지부(지부장 이상구)가 창립되고, 그해 9월 12~16일 서라벌예술제가 거행되었으며, 이 때 서울에서 이흥렬․윤이상 선생이 전국남녀음악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 초청이 되었다.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맞이한 경주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어해서, 당시의 음악부가 주관하여 예정에 없는 음악세미나를 귀로다방에서 갑자기 개최하고, 선생의 가곡「낙동강」을 중심으로 특강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경주에는 월성국민학교에 소형 그랜드 피아노, 경주중학교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을 뿐 이다. 하는 수 없이 경주중학교에서 시내 귀로다방까지, 당시 음악부장이었던 필자가 포장이 되지 않는 험한 길로 리어카에 피아노를 싣고 옮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음날 경주극장에서 경축음악회(경주합창단 단장 최진규, 지휘 안종배)가 끝난 뒤, 윤이상 선생과 윤경열 선생이 처음 대면한 것이,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교가를 작곡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54년 10월 10일,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개교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정식으로 제정 발표된 이 노래는, 반백년의 풍상을 겪으면서 신라문화를 지키는 노래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윤경열 선생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에 대한 뜨거운 애정,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시는 집념을 이 노래가 작곡 된 지 1년 뒤에, 윤이상 선생에게 보낸 친필 편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 정말 이제부터는 선생님 노래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노래 없는 세계는 죽은 세계이고, 노래 없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죽은 세상에서 생기 없이 자라나는 곰팡이밖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박물관학교에는 노래가 없어서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중략- 밭고랑의 한 조각 기와장도 옛날을 말한다지만, 생명이 없이 천년인들 무얼 하겠습니까. 노래가 있어야 천년이고, 사람의 마음을 휘두르는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박물관의 목 떨어진 돌부처나 깨어진 그릇조각들이 모두 리듬과 조화를 가진 노래할 줄 아는 유물들입니다. -중략- 시상(詩想)도 없는 가사에 선생님이 만드신 곡조로 부르게 되어, 너무나 분에 넘치는 영광에서 마음이 괴로울 뿐입니다 - 후략 -
신라문화동인회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 노래로 자라난 많은 분들이 동인회의 주축을 이루면서 신라문화의 지킴이로서, 지금도 향토사랑에 심혈(心血)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경주는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1. 4. 25. ahnjbe@yahoo.co.kr |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1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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