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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배 교수 음악산책(46)-애국가와 스코틀랜드 민요「작별의 노래」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입력 : 2011년 08월 16일
↑↑ 안종배 교수
ⓒ GBN 경북방송

음악사전에 안익태 선생이 1936년 프레스 장학금으로 유럽에 건너가 빈에서 R. 슈트라우스를 사사, 당시까지 영국민요에다 가사를 붙여 부르던 우리나라 애국가를 새로 작곡하였다고 짤막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국내에서도 해방직후, 스코틀랜드 민요「작별의 노래(Auld Lang Syne)」에 우리의 애국가 가사를 붙여 불렀던 일을 7·80대는 기억을 할 것이다.

18세기 말,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버엄즈(Robert Bums, 1759~1796)로부터 한 곡의 노래 악보와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가 전달되었다.
‘이 곡은 오랜 옛날의 고요(古謠)로, 지금까지 인쇄된 일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노인이 부르는 걸 듣고 처음으로 채보를 한 것이며, 이 곡은 어떤 뜻을 가지는 가사에도 잘 어울리는 멜로디입니다’

시인 버엄즈는 스코틀렌드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빈곤 속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를 읽고, 1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대성(大成)을 하였다.
그는 혁명사상의 선구자로, 모순에 찬 당시의 사회·교회·문화 전반에 걸쳐 예리한 필치로 비평을 했다. 그러면서 정열적인 향토애로 스코틀랜드 농민과 서민의 순진하고 소박한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에, 애국시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작별의 노래」는 그 후 버엄즈의 말대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가사에도 잘 어울리는 멜로디로 세계에 널리 퍼져나갔다.

이 노래가 서양음악에 소양이 없는 동양사람에게도 쉽게 불려 질 수 있으며, 「작별의 노래」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까닭은 멜로디가 「도·레·미·솔·라」다섯 음에 포함되어 있어서 단조롭게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민요도 음구조(音構造)는 좀 다르지만 역시 5음 음계로 구성되어 있어서,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우리의 정감에도 잘 어울린다.

잉글랜드와의 오랜 분쟁에서 신음하던 스코틀랜드인은 런던에 살면서도 떠나온 고향을 잊지 못하여 여가만 있으면 고향사람과 어울려서 스카치를 마시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렇듯 향토애로 다져진 그들은 섣달 그믐날이면 성(聖)포올교회 광장에 모여들어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들으면서「작별의 노래」를 불렀다.

이 같은 풍습은 20세기 초엽까지 런던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에 일제치하 만주와 상해 등지에서 활약하던 독립투사들이 이 곡조에 애국가의 가사를 붙여서 애창을 했으며, 해방 직후까지 국내에서도 애국가로 불려졌던 것이다.

나라 잃은 애수에 찬「작별의 노래」의 애국가와 나라 찾은 환희에 약동하는 안익태 선생 작곡의 애국가가 매우 대조적이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1. 8. 15. ahnjbe@yahoo.co.kr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입력 : 2011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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