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룡의 세상 읽기(23)-신라의 달과 그 흔적을 찾아서
김성배 기자 / 입력 : 2011년 09월 26일
|  | | | ↑↑ 김경룡 | | ⓒ GBN 경북방송 | |
주말에 직원들과 함께 신라인의 숨결과 천년의 자취를 찾아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먼저 경주엑스포 정강정 사무총장님의 “신라인의 사유”를 주제로 한 특강을 들은 후 첨성대 야간투어와 반월성에서의 심야토론 그리고 대왕암 일출과 엑스포 관람 등 이었습니다.
정총장님의‘신라’에 관한 강의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의 해박하신 내용으로 신라의 정수만을 뽑아오신 명강의 였습니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서울은 경주이며, 문화예술의 뿌리는 신라이고, 신라 사람들이 꿈을 꾸었으며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문화예술부문에서 도솔가, 서동요, 처용가, 모죽지랑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등의 신라향가가 고전문학의 출발이며, 천마도와 솔거가 황룡사 벽에 소나무를 그린 노송도는 새들이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고전미술의 원류이며, 통일신라시대의 3가지 현악기와 관악기인 삼현삼죽(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그리고 만파식적으로 출발한 대금, 중금, 소금)이 고전음악의 뿌리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또 흥륜사 수막새의 모습과 비슷한 천년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 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였으며 경주시의 브랜드 슬로건인 ‘Beautiful 경주’는 천년의 미소가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신라사람들이 별을 헤아리다가 달을 낚았는데 동해의 문무왕에서 낚은 달을 기림사가 있는 함월산(含月山)으로 옮겼다가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고 있는 토함산(吐含山)에서 서라벌의 궁궐 월성(月城)으로 향했는데 먼저 동궁 옆의 월지(月池)로 갔다가 임금님이 계신 중궁전과 서궁에서 노닐었는데, 나라가 기울어 임해전지에서 달을 담은 술잔을 왕건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그 후 왕건이 술잔에 담은 달을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고려 왕궁 터에 두고 가끔 만월대에 가서 주연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동궁의 터 옆 임해전의 달은 어디로 가고 기러기(안:雁)와 오리(압:鴨)만 놀고 있어서 안압지가 되었으며, 같은 하늘아래에서 달이 두 개가 있을 수 없어 경주의 월성은 이제 반월성이 되었습니다.
천년이 지나 나무와 달로 지칭되는 박목월선생님이 경주에 태어나시어 신라의 달을 시로 되가져오셨다고 하시면서 시 낭송으로 마무리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강의를 마친 총장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신라의 별을 헤아리던 첨성대로 서둘러 향했습니다. 토착신앙과 과학기술을 접목하여 민심을 통합한 27대 선덕여왕의 지혜인 첨성대는 가로등 불빛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27대 왕이라 27단(?)이라고 하는 첨성대의 층수도 확인하고, 24절기의 뜻으로 남쪽중간 창의 위와 아래가 각각 12단임을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반월성으로 옮겼습니다. 서기101년 파사왕 때 쌓은 토성으로 동서900m, 남북 260m, 약20만㎡에 목조건물 대궁, 양둥, 사량궁의 삼궁과 남문, 북문인 귀정문, 인화문 등의 문과 월상루, 망덕루 등 누각이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석빙고만 남아 있습니다.
또 동쪽의 명활산성, 서쪽의 서형산성, 남쪽의 남산성, 북쪽의 북형산성이 월성을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11시쯤 대궁으로 추측되는 중앙부근에 둥글게 자리를 하여 심야 토론과 소통의 시간 그리고 시 낭송과 신라의 달밤 노래 등을 함께 했습니다. 신라인의 숨결과 고성방가에 대한 꾸지람 소리와 우리를 책하려는 화랑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철수를 했습니다.
숙소에서 눈을 잠깐 붙이고 어제 밤에 날려 보낸 달은 포기하고 희망의 태양을 찾아 문무대왕이 계시는 대왕암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떠오른 태양은 새해 첫날 수많은 인파의 환호 속에 솟아 오른 바로 그 해와 같았습니다.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용솟음치는 힘찬 기상을 서라벌과 경산 그리고 대구까지 담아 왔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단장을 새롭게 하고 천 년 전의 모습을 오늘에 조명한 천년의 이야기 쇼를 펼치는 엑스포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립하였으며 반도국가의 독립국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가장 약한 신라가 통일을 하는 데에는 하드웨어 구축의 진흥왕, 정신적 인프라를 구축한 선덕여왕, 뛰어난 전략가 김춘추, 김유신장군과 화랑 그리고 호국불교 사상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진 백성들 모두의 단결된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위기의식을 갖고 도전하는 신라인의 의지가 바로 오늘 우리 몸에 남아 있습니다.
B(Birth)와 D(Death) 사이에 C가 있는데 C에는 Can, Captain, Cash, Chairman, Challenge, Champion, Chance, Change등이 많이 있습니다. 잘 조합하면 멋진 답이 나올 것입니다.
논어 - 공야장편 (6)
제14 장 : 가르침을 받으면 바로 실행을 하라.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 유문 미지능행 유공유문
자로는 가르침을 받고 아직 실천하기 전에 또 다른 가르침을 들을까 봐 걱정했다.
제 15 장 :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의 시호를 문이라고 했다.
子貢 問曰 公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자공 문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자왈 민이호학 부치하문 시이위지문야
자공이 물었다.“공문자는 어째서 서호를 문이라고 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민첩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이다.”
제16 장 : 군자의 네 가지 도를 지켜라(신중한 행동, 어른 공경, 백성애호, 법도 있는 다스림)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矣 자위자산 유군자지도사언 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
공자께서 자산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군자의 도(道) 네 가지나 갖추었다. 즉, 몸가짐을 공손히 했고, 윗사람을 섬기는데 정성을 다했으며, 백성을 보살피는 데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리는 데 의로웠다.” |
김성배 기자 /  입력 : 2011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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