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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연인 강은교 시인을 찾아서 -황명강 대담

강은교 시인의 -나의 삶, 나의 문학-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1년 10월 25일
-나의 삶, 나의 문학-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
詩의 연인 강은교 시인을 찾아서

대담 황명강(시인)



부산 금정산은 초록 아래 엎드려 손톱 발톱마저 감춘 채였다. 마주 오는 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범어사 일방통행 일주도로엔 사람도 바람도 초록에 묻혀 제멋대로 일렁거렸다.
그 길 언저리에 자리한 아담한 레스토랑 ‘산마을’,
어떤 빛깔에도 물들 것 같지 않은 단아한 모습의 강은교 시인이 물결위의 수련처럼 수련의 그림자처럼 실내의 음악소리를 열고 들어섰다.
부수고 싶은 벽을 만났으나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던 그 언젠가 선생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를 암송하며 흐르는 물이기를 소망했던 적이 있었다. 시를 통해서 흠모했으나 멀기만 했던 강은교 시인, 바다를 느끼게 하는 초연한 눈빛과 물빛 블라우스 앞에 앉고 보니 문득 좋아하는 시 ‘사랑법’이 떠오른다.


ⓒ GBN 경북방송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황명강 - 선생님,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대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제 9회 유심문학상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수상소식과 11일 날 백담사에서 시상식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조만간 강원도 나들이를 하시겠군요.


강은교 - 고맙습니다. 그렇잖아도 몇몇 지인들과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작품은 2010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발표한 ‘희명’이란 제목의 시입니다. 나의 이력이나 공로에 따른 수상이 아닌 ‘작품상’ 이어서 매우 가치 있는 상이라 생각되고 기쁩니다. (선생은 ‘희명’이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희명’ 외에도 역사 속의 중요한 여성 인물을 소재로 30 여 편의 시를 써서 신문에 연재하셨다고 한다.)

황명강 - 선생님! 많은 독자들과 문인들이 선생님의 근황을 궁금해 합니다. 좀 들려주시겠습니까?


강은교 - 지난 2월에 정년퇴임을 하고 이젠 동아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하다는 그죠?
(가볍게 웃음을 보이시며)
인생이 아주 즐겁다는 걸 느끼면서 생활하고 있어요.
요즘은 사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는데, 사진이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쁜 학교생활에서 순간적으로 놓쳐버리곤 했던 이미지들을 사진을 통해 포착합니다. 사진의 이미지가 시에 활력을 제공하는 셈이지요.
나는 연구실이나 방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책을 읽고 시를 쓰는 편이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근래는 사진과 열애에 빠져서 경주, 대구, 서천개펄 등 사진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선생은 잠시 망설이시더니 오늘 수련이 있는 날이라시며 ‘국선도’ 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신다.)
‘국선도’를 만나지 1년 쯤 됐는데 아주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요.
난 원래 느린 사람인데, 그동안 빠르게 살아와서인지 느린 것을 못따라하고 있습니다.
느림이 어떻게나 어려운 것인지, 느림을 열심히 배우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

말씀을 듣다보니 약속 장소가 송정이나 다대포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이 아닌 이곳 숲속인 것이 선생의 느린 생활과 무관하지 않음이 느껴진다.
얼마 전 금정산 중턱,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사원같은 아파트로 터전을 옮기고 느림의 싹을 틔우고 계신다니.....
독자의 마음을 씻어주고 다독여주는 시어들과 다름없이 강은교 선생의 눈빛이나 말투, 그리고 손짓 하나까지 참으로 정결하고 순수한 물빛이라는 느낌이다.


***

황명강 - 선생님께서는 1968년 사상계에 ‘순례자의 잠’외 2편으로 등단한 후 왕성한 창작력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내 놓으셨습니다.
문학과 처음 만난 지점과 문학 활동을 함께 한 동인 등 지나온 문학적 개인사를 듣고 싶습니다.


ⓒ GBN 경북방송



강은교 - 나에게 시를 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해요. 그 외에 그다지 잘 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학생시절엔 공부를 좋아한 공부벌레였어요. 대학교 1학년 때 헌책방엘 자주 갔는데 문학, 철학 서적을 많이 읽었죠. 까뮈, 샤르트르, 엘리엇을 읽었고 소설을 썼습니다. 특별히 문학공부를 따로 하거나 문학을 지도해주신 스승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대학 졸업반 때(23세) 사상계로 등단을 하고 지면에 시를 발표 했었는데 신석정 선생님이 시를 보시고 편지를 주셨어요.
신석정 선생님이 서울 오셨을 때 몇 차례 영화를 보고 불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아무튼 늘 혼자였어요.
동인활동이라면 1960년대에 윤상규(윤후명), 임정남, 정희성, 김형령, 박건한 등과 ‘70년대 동인’을 결성해 동인지를 3집까지 냈었지요. 요즘도 각각의 위치에서 훌륭한 문학적 족적을 남기고 있어즐겁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황명강 - 40여년 끊임없이 이어져온 시력의 비결은 어디에 있으며 시인으로서 어떤 삶을 지향하셨을까 궁금합니다.


강은교 - 혼자서 생활한 시간들이 나로 하여금 늘 시 곁에서 시를 사랑하며 살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출발을 해야 당도하듯이 시인은 시를 써야 합니다.
외로워서 시를 쓰다듬고 외로움을 꽃처럼 꽂은 채 시를 쓴 날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40여년, 단 하루도 시를 놓았던 적이 없었네요.

시인은 대상으로부터 아름다움을 꺼내는 사람입니다.
시든 사진이든 예술은 긍정적이어야 하며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꺼내서 보게 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우리 사회 속에서 유용해야 할 것이며
예술도 꼭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입니다.
시인은 시로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나아가 시를 찾는 이들을 치유한다는 생각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바다 시치료’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강은교 - 시인은 여성이되 문학의 출발점부터 性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적 존재론적 시를 쓴 시인이다. 20대엔 지병으로 수차례 생사를 넘나들며 가장 어둡고 가장 강렬한 인생의 극점을 경험하기도 했다. 현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굳건하게 쌓은 성곽처럼 단단한 시편들로 하여 쉽사리 다가설 수 없었던 시인. 그러나 오늘 느끼는 다정함은 대표 시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의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처럼 깊어지고 깊어진 인성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많은 평론가들이 선생의 시 세계의 주요 테마를 ‘허무’라 했고, 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삶은 허무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허무에서 출발하는 생명력은 얼마나 강인하며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인가.



황명강 - 정지용문학상 수상 이후 시집을 내지 않고 계시는데, 선생님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반가운 계획이 있으신지요?


강은교 - 예, 시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행적을 돌아본다면 공백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유인즉,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책을 많이 정리했습니다. 소중하게 소장했던 도서들인데 도서관에 기증을 하려고 해도 요즘은 받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됐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이리도 무거운 존재인데 나까지 자꾸만 책을 내서 무게를 보태려하는가. 한동안 시집 출간을 의도적으로 미루었는데 올해는 꼭 독자들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겠습니다.


황명강 - 선생님! 계속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시와 관련된 선생님의 사랑과 가족관계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강은교 - 사랑!
늘 사랑을 했고 지금도 사랑을 합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사진에 빠져서 알게 된 건 그동안의 내 삶은 시와의 열애로 일관되었다고 느껴졌어요.
학교 일 외에는 도대체 시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재주가 없어서 시만 썼고 시만 사랑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특히 예술은 외롭고 호젓하게 가야하는 길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족으로는 딸 하나 있습니다. 버클리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딸 임강희는 현재 창원에서 두 아이의 엄마, 주부로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임정남 선생과는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에 만나서 열애 끝에 결혼을 했지요. 문학 활동도 함께 했었고요.
(이 대목에서 강은교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부친은 독립운동가 강인택 선생임을 밝혀둔다.)



황명강 - 선생님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어떤 마음 으로 시를 쓰고 시심을 유지해야 할지 늘 고민스럽습니다. 선생님 의 경우는 어떠하신지 도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은교 - 시란 무엇이다. 나의 시는 어떠하다. 등등 시인이 시에 대해서 무엇 인가를 정의하는 순간부터 그 시인에게서 시는 떠나간다고 생각됩 니다. 문청시절의 열정을 그대로 유지할 것, 교만하지 말 것, 그리고 사물이나 상황 앞에서 순수하게 감동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 무엇이건 정답이 있겠습니까. 스스로가 원하는 곳에 닿아있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명강 - 선생님 감사합니다.
9월 3일 진해에서 개최되는 제 16회 김달진문학제에서 다시 뵐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강은교 - 예, 김달진문학제는 경남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제로 대단한 문학축제이지요. 늘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문학이 지역정서를 보듬고 순화하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축제에서 만나면 더욱 반갑겠군요.


황명강 - 다시 한 번 선생님의 유심문학상 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당선 시 ‘희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GBN 경북방송



<<제 9회 유심문학상 작품상 수상작>>


희명


강은교


희명아, 오늘 저녁엔 우리 함께 기도하자
너는 다섯 살 아들을 위해
아들의 감은 눈을 위해
나는 보지 않기 위해
산 넘어 멀어져 간 이의 등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기 위해
워어이 워어이
나뭇잎마다 기도문을 써 붙이고
희명아 저 노을 앞에서 우리 함께 기도하자
종잇장 같아지는 흰 별들이 떴다
우리의 기도문을 실어 갈 바람도 부는구나
세월의 눈썹처럼 서걱서걱 흩날리는 그 마당의 나뭇잎 소리
희명아, 오늘 밤엔 우리 함께 기도하자
나뭇잎마다 기도문을 써 붙이자
워어이 워어이
서걱서걱 흩날리는 그 마당의 나뭇잎 소리



강은교 시인 약력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8년 9월 ‘사상계’ 신인문학상 ‘순례자의 잠’외 2편 당선 등단
시집-1971년 첫시집 ‘허무집’ 시집 ‘빈자 일기’(민음사,1977), ‘소리집’(82), ‘붉은 강’(84), ‘우리가 물이 되어’(86), ‘바람노래’(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89)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문학사상사,2002), ‘초록 거미의 사랑’(창비, 2006)를 포함한 13권
산문집- ‘그물사이로’(지식산업사), ‘추억제’(민음사)를 포함한 8권.
동화집- 3권, 산문시화집- 3권, 역서 ‘소로우의 노래’ 등 간행

-수상-
제2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제 37회 현대문학상 수상
제 18회 정지용문학상

현재 동아대학교 명예교수




황명강 시인 약력

경북 경주 건천 출생
경주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졸업
2005년 시 ‘몽돌’외 4편 서정시학 신인상 당선
육군3사관학교 외래교수 역임
경주신문사 편집인 겸 부사장 역임
현재 GBN경북방송 대표이사
시집 - ‘샤또마고를 마시는 저녁’(서정시학사,2011)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1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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