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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암시인, 4번째 시집 《꽃과 별과 총》출간

시와 반시 기획시인선 30번째
진용숙 기자 / ysjin130@korea.com입력 : 2024년 06월 23일
ⓒ GBN 경북방송
  

사월 산길을 걷다가, 엉겁결에
한 소식 받아 적는다

- 저마다 꽃!

연두에서 막 초록으로 건너가는
푸름의 빛깔 빛깔들 그
제각각인 것 모여, 사월 봄 숲은
그윽한 총림(叢林)이다

참나무너도밤나무개옻나무고로쇠나무단풍나무소나무오동나무산철쭉진달래산목련아까시나무때죽나무오리나무층층나무산벚나무싸리나무조팝나무서어나무물푸레나무……,

꽃을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몸의 구부러짐과 곧음
색깔의 유무와 강약에도 관계없이
오롯이
함께 숲을 이루는 저 각양각색의
나무, 나무들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 또한, 그렇다
저마다 꽃이다 <‘저마다, 꽃’ 전문>
↑↑ 이종암시인
ⓒ GBN 경북방송

포항에서 활동중인 이종암시인이 4번째 시집 <꽃과 별과 총>(시와 반시)을 펴냈다.
등단 30년을 넘긴 시인은 포항에서 국어교사로 31년을 근무하다 명예퇴직을 했다. 지금 바람처럼 떠돌며 자유롭게 시작을 하고 있는 그의 시를 보면 세상이 글밭이다.

이 시집은 총 3부로 꽃과 총(塚, 무덤), 그리고 별 이야기로 가득찬 43편의 시가 실려있다.
1부에 수록된 시 13편 중 <육화산>을 읽다보면 시인에게 자연이 심미적 대상이 될 때 풍경이 될 수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날마다 바라보는 육화산은 시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자연이자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풍경이다.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형형색색의 경험들이 꽃과 별, 총으로 무리지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날이 새거나 어둡거나 상관도 없이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날마다
고개들고 바라보면 육화산(六花山)
불혹도 한참 지나서야처음 올랐네

산굽이 돌아서고 올라설 때마다
저 멀리 발아래 내려다뵈는
동창천 강줄기는 푸르게 웃으며
내게로 달려오고
강 가까이 옹기종기 사람들 모여 사는
용정 갈명 명대 북지 삿갈 호방
마을들 여기저기 꽃처럼 피어나네

산봉우리 여섯 꽃잎처럼 둘러싸여
얻은 이름 육화산인가?
산에 함께 올라간 어릴적 친구들
종의 영자 용식 전열 명자 태봉이
동무들은 모두가 오래 정든 산 같고
꽃잎, 꽃잎, 꽃잎들만 같은데

확확대던 숨결 유야무야 싱거워지면
우리도 저 육화산 속으로 들어가서, 끝내
산의 부분으로 육화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내통 위에 꽃은 또 피고 지고 (시 육화산(六花山)전문

이 시를 음미하면서 읽다보면 존재의 근원적 한계가 자연이 그에게 남몰래 전한 비밀 같은 것, 내통을 독자들도 경험할 수 있으리라.


다음은 詩‘ 시론(詩論)’전문이다

‘3학년 9반 교실 ‘독서’수업 시간, EBS수능특강 언어영역 60쪽 황동규선생의 시 ‘퇴원날 저녁’을 가르치다가 “주인이 나오기 전에/ 배터리 닳지 말라고 속삭인다”에 밑줄 그으라고, 시인은 저렇게 배터리 닳아가는 자동차에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위대한 거라고, 아이들에게 받아 적으라고 윽박지른다. 괄호 열고, 우리의 이종암시인 또한 위대하다, 괄호 닫고,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아이들은 에이, 웩웩, 책상두드리고 고함지르고 교실이 완전 난장판이다. 아니다 야들아, 진짜라니까. 내 말 못믿는 사람,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와서 봐라, 내 책상 위 물컵 속에 며칠 전 화단에서 꺾어온 매화 활짝 웃고 있단다. 그거 내가 자꾸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 건네서 활짝 웃으며 꽃 핀 거라니까.
시(詩)라는 건 세상에 말걸기이다. 수업 끝.‘’

‘시(詩)라는 건 세상에 말걸기’라는 시인의 말은 망설이면서 들어도 참말이다. 학창 시절의 순수와 열정을 다 내버린 채 나약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그의 시는 성공적으로 말을 걸고 있다. 몇 번을 읽어보아도 웃음이 절로 나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시에 말을 거는 그의 각별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집에 제 1부 ‘꽃’, 제 2부 ‘총’, 제 3부 ‘별’로 나누어 43편의 시가 실려있다.
편편마다 진솔하고 내면 깊은 시집을 펴 보면 시인의 고향 경북 청도와 포항의 구만리, 경남 사천, 단양 가곡, 동강과 서강을 누빈 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 길들이 닿은 곳은 ‘저마다의 꽃’인 사람들의 자리이고, ‘별을 따다 묵는’ 이들의 동네다. 때론 해원(解冤)과 영원성을 드러내는 주검의 자리[塚]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 건 아마도 이 시집이 가진 진솔한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집 한 권에 자꾸 읽고 싶어지는 대목이 많아 손이 자꾸 가는 시집, 한 작품만 더 소개해볼까 한다.


‘포항의료원 중환자실 심장과 폐, 신장 몸 다 망가진 채 건너가려고 며칠 째 저리 사투를 벌인다 넉 달 전, 마누라 먼 곳 떠나보내고 눈물로 하루 또 하루를 보내다 이젠 기어이 먼 길 건너가려 한다 육신의 고통 극에 달하는지 여든 다섯 노인이 아이처럼 엄마, 엄마를 부르다 정신을 놓고 다시 봉순아! 마누라 이름 부르며 꺼억, 꺽꺽, 숨넘어가는 우리 장인 볼 수도 없고 울지도 못한다 나는, 가능만 하다면 어서 건네주고 싶다 몇 시간 후, 고요히 입적에 든다 제 혼자서 산소마스크 심장박동기 내던지고 호(呼)와 흡(吸)의 사이마저 다 지우고 적멸로 가는, 저 일대사(一大事), 노을보다도 장엄하다.’

 시 ‘건너가다’를 읽다보면 갑작스런 죽음 말고 오랜 ‘병사(病死)’를 경험한 이는 공감한다. 그 죽음이 가까운 피붙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죽음이 얼마나 비장하고 장엄한지, ‘호(呼)와 흡(吸)의 사이마저 다 지우고 적멸로 가는’ 일이 저녁 노을보다 짙은지 알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제가 그 한순간에 담겨 있다.
<시 ‘건너가다’ 전문>

신상조 문학평론가는 ‘무구(無垢)의 서정’이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무덤(총)을 찾고 꽃과 별을 노래하는 이종암의 시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에게 시란 삶을 체험하고 표현하고 이해하는 불가결한 수단”이라 쓰고 있다.

약력: 이종암 시인은 1965년 경북 청도 매전에서 출생했다.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 포항 대동고등학교 교사로 31년간 근무하다가 명예퇴직 후 자유인이 되었다. 1993년 ‘포항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0년 시집 ‘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물이 살다 간 자리’ 외 ‘저, 쉼표들’, ‘몸꽃‘ 등이 있다.
진용숙 기자 / ysjin130@korea.com입력 : 2024년 0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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