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룡의 세상 읽기(52)-봄날은 간다.
논어-태백편 (1)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2년 04월 16일
이 땅 곳곳에 봄꽃이 만발했습니다. 오늘은 영천 자양면에서 개최된 ‘벚꽃 터널 100리 마라톤’에 봉사활동 차 갔더니, 댐 주변 벚꽃 터널의 길이가 무려 100리나 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시장님의 자랑이 대단했으며,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댐 안의 물그림자 또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오가는 길 주변에는 배꽃, 복사꽃, 살구꽃 그리고 진달래가 꽃 대궐을 이루고 있었고, 배꽃을 보면서는 배꽃의 밤 모습을 노래한 ‘이화에 월백하고’를 떠올리며 오늘밤은 기필코 그 정취를 느껴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분홍빛 중에서도 가장 분홍빛다운 복사꽃빛깔을 보며 ‘몽유도원도’의 소재인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으로 갔던 꿈을 꾼 날이 바로 1447년 4월 20일이라고 하니 그 시절이나 요즈음이나 꽃피는 절기는 변함은 없네요.
봄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 벚꽃, 개나리, 그리고 진달래, 배꽃, 복사꽃, 라일락 등으로 피는 순서가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그 서열이 무색해졌지만 나비와 벌의 업무량 분산을 위해 순서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벌과 나비의 업무처리 기한이 열흘 정도이니 꽃향기는 좋지만 벌과 나비가 혹사(?)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핀 벚꽃이 부드러운 꽃잎 옷을 벗으니 개나리와 함께 파란 옷으로 갈아입고 찬 겨울 내 준비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많은 꽃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콘서트‘봄날은 간다‘ 에서 소리꾼 장사익은 금방이라도 사뿐히 날아오를 듯한 새처럼 혹은 나비처럼 훨훨 나르듯 자연의 노래를 가사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가며 온몸으로 토해 내었습니다.
봄날 산기슭이나 냇가. 골짜기 등 지천으로 핀‘찔레꽃’을 노래할 때에는 어린 시절 찔레꽃이 만발할 때 온 동네가 그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였던 생각이 아련하였습니다.
연이어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에는 모두가 숨죽이며 그가 토해내는 영혼을 부르는 노래‘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중략) 봄날은 간다’에 삭여내는 세월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짓궂은 봄과 화사한 봄이 새로운 세상을 품고서 이 봄은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봄꽃이 꽃 대궐은 이루고 있는 요즈음 곱고 향기로운 봄꽃 향연을 눈에 새기고 마음과 가슴에 가득 담으시어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십시오.
|  | | | ↑↑ 대구은행 경사지부 김경룡 부장 | | ⓒ GBN 경북방송 | |
논어-태백편 (1)
제1 장 : 양보가 오히려 미덕이 된다.
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자왈 태백 기가위지덕야이의 삼이천하양 민무득이칭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은 덕이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 차례나 천하를 양보했으면서도 백성들에게 칭찬받지 않으려 했다.”
제2 장 : 모든 생활에 예(禮)가 있어야 한다.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 時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자왈 공이무례칙로 신이무례칙?시 용이무례칙란 직이무례칙교 君子 篤於親則民興於仁 故舊不遺則民不偸 군자 독어친칙민흥어인 고구부유칙민부투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공손함도 예가 없으면 헛수고가 되고, 신중함에도 예가 없으면 두려워하게 되며, 용감함도 예가 없으면 난폭하게 되고, 정직함도 예가 없으면 얽매이게 된다.”“군자가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면 백성들 사이에 인(仁)이 흥기(興起)하게 되고, 옛 친구를 잊지 않으면 백성들도 인정이 야박해지지 않는다.”
제3 장 :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잘 보존하라.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증자유질 소문제자왈 계여족 계여수 시운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小子 소자
증자가 병을 앓자 제자들을 불러서 말했다. “내 발을 펴보아라. 내 손을 펴보아라 시경에 말하기를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 가에 임한 것처럼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하라’ 했으니, 얘들아 이후부터 나는 이런 근심을 면하게 되었구나!”
(*)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장자(長子)로서 아버지 태왕이 태백의 아우 계력(季歷)의 아들인 문왕(文王)에게 성덕(聖德)이 있음을 알고 왕위를 계력에게 전하려 하자, 태백은 왕위를 아우 계력에게 양보하고 형월(荊越)지방으로 피하여 은둔하였음.
<태백편 : 천하를 동생에게 양보한 태백에 대한 찬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시작하는 8번째편> |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2년 04월 16일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포토뉴스
토마토 거리 원도이 벽을 쌓읍시다 아니, 벽을 삶읍시다 토마토처럼 ..
|
감은사로 간 시인류현주답사객으로 보이는 45명을 태운 버스가주차장으로 ..
|
최동호 교수의 정조대왕 시 읽기
정조는 1752년 임신년에 출생하여 영조 35년 1759년 기묘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