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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경주다문화 수기공모 작품 읽기 첫 번째
대상 전향란(중국)의 " 딸부자 엄마!"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2년 07월 02일
|  | | | ⓒ GBN 경북방송 | |
딸부자 엄마! /전향란
해마다 경주의 봄에 피는 벚꽃은 나를 설레게 한다. 나는 경주의 벚꽃만큼이나 예쁜 네 딸을 가진 딸부자 엄마다. 14년 전 이맘 때 나는 천신만고 끝에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한국행을 택한 순간부터 순탄치 못했던 서류준비와 그 과정에 받았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위로라도 해주듯 4월에 핀 경주의 벚꽃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고 10년이 넘은 지금도 나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지금의 행복이 있기까지는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였다. 애지중지 키워주신 부모님을 만나지는 못해도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통화를 하면 울기만 하면서도 수화기를 놓지 않아 한 달 전화요금이 80만원이 청구되었다. 평소에도 혈압이 높으셔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맘고생으로 몸 저 누우셨고 나 또한 미안함과 서러움으로 매일 눈물로 세수를 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출국 서류절차가 자꾸 늦어지면서 만삭의 몸으로 한국에 왔으니 힘든 상황은 두 배가 되었고 조선족이라 하지만 한국어며 특히 경주 사투리에 외래어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사람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바로 옆방에 계시는 어머니도 피하며 생활했다.
낮잠을 자던 어느 날 창밖에서 친정어머니와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꿈을 꾸는 것인가?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니 분명 아주머니들의 수다 소리였고 나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열었고 "엄마~~~"하고 불렀다. 놀라신 동네 아주머니들은 수다를 멈추었고 시선은 나에게로 향했다. 아주머니들 속에서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엄마의 자상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다시 닫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엉엉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창피함도 부끄럼도 아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짠하여 눈물이 난다.
경제적 상황이 풍족하지 못한 시댁으로써 나를 중국에 보내줄 염두를 못 내고 있었던 상황이고 부모님 초청도 법이 바뀌고 또 바뀌면서 여의치 않았다. 얼마 지나서 첫 딸 출산과 양육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씩 흐려져 갔고 어려운 주위상황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경주시에서 다문화가정 친정보내기 사업이 그때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일하면서 센터 소개로 친정을 다녀와 행복해 하는 고향 친구들 모습을 보노라면 같이 행복해진다. 덕분에 선물로 받은 어릴 적 즐겨먹던 영양 간식을 센터에서 나눠 먹으며 즐거워하곤 한다.
그렇게 또 2년이 흘러 둘째 딸과 셋째 딸이 태어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그리운 친정 부모님도 초청해서 만나고 생활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남편의 이직으로 안양에 2년 거주하면서 경주가 많이 그리웠다. 입국초기 알아듣지 못하던 사투리가 구수하게 느껴지고 그간에 내가 얼마나 사투리를 많이 썼는지 안양에 있을 때 아르바이트 면접을 갔는데 사장님이 말투 땜에 채용을 거부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시 경주로 왔을 때 얼마나 편안했는지 며칠을 푹 잤다. 안양에서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와 생활이 바쁘고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경주가 엄마의 품처럼 편안함을 느꼈었다. 딸아이들도 표정이 한층 더 밝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경주에서 나에게 작은 천사가 찾아 왔다. 나의 넷째 딸 별(태명)이가 생겼고 지금은 태어난 지 6개월이 다 돼 간다. 누가 얼리면 활짝 웃어 보답해 주는데 마치 봄철에 활짝 핀 꽃들과 닮았다. 때가 되어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 딸들이 예뻐서 꽃잎도 다 떨어지네~' 라고 말하곤 했다. 중학생이 된 큰딸도 그 말을 들을 땐 흐뭇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았다.
2009년도 동생을 통하여 경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알게 되었고 한국어뿐 아니라 컴퓨터수업도 있다는 걸 알고 공부를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던 센터 선생님께서 보건소 중국어 통·번역으로 추천하여 취직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에서 내가 적성에 맞는 직업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리고 원하던 직장에 출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틈틈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결과 외국인 한국어능력시험에서 최고급인 6급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같은 해 컴퓨터 ITQ자격증 시험에서도 A급을 취득하였다. 그 무렵 보건소 통번역사업이 종료 되면서 잠시 쉬게 되었고 쉬면서도 센터에 부지런히 나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고 했었던가?! 또 한 번의 기적이 나에게 찾아 왔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로망으로 불리는 경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중국어 통번역지원사로 취직하게 된 것이다. 많은 고향 자매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고는 있지만 사실은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작년 4월쯤 넷째 딸을 임신한 걸 알고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이미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딸이 셋이나 있었고 무엇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취직한지 불과 2달 밖에 안 되어 어쩌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위기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던 이튿날 이른 아침, 평소 센터에서 열심히 공부하러 다니면서 친해져 자매처럼 지내던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 놓았다.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버스타고 1시간 남짓한 거리를 망설임 없이 나와 준 그 친구를 보는 순간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 아이가 부담스럽고 낳아서 키워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 말끝에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면서 “무슨 소리를 하냐?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 하느냐”고 하였고 낳기만 하면 본인이 키워주겠다고 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나는 그런 답을 해주지 못했을 것 같았다. 순간 그 친구에게 내가 평소에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이 우리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벌써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 난 큰딸 언어치료 비용이라도 마련할 목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던 중에 우유배달 광고가 내 눈에 띄었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고 여유 돈이 없는 집안 형편에 자본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한 달 될 무렵 나는 난관에 부딪혔다. 수금을 해 오라는 경리아가씨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실정을 몰랐던 나는 한 달 열심히 배달만 하면 월급을 주는 걸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일주일, 특유의 조선족 말투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수금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마감일이 다가와서 회사에 입금한 돈을 계산해 보니 아직 100만원이 넘는 수금이 남았고 남편의 월급에서 생활비 쓰고 남은 돈은 고작 50만원뿐이라 턱 없이 부족했다. 나의 이런 고민을 어떻게 아시고 평소 왕언니로 칭했던 여사님이 선뜻 남은 수금을 완납처리 해 주셨다.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컸었다. 돈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나를 뭘 믿고 큰돈을 빌려 주셨을까?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분과의 인연은 이어졌고 친정언니와 동생이라 할 만큼 친한 사이가 되었다.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센터에 방문했을 때 센터선생님 한분이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을 건네 주셨는데 내용의 주제는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기적이라고 하기 보다는 사람이 꿈을 가지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는데 노력의 결과"라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삶은 지금에서 뒤돌아보면 좋은 사람들이 항상 옆에 있었지만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다.
겨울 산이나 들을 보면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나무와 풀들이 어느새 파릇파릇 하다. 더불어 봄의 전령사인 벚꽃이며 개나리 철쭉이 곱게 피었다. 봄이 오는 속도가 아기가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속도와 일치하다고 들었다. 한 달 전쯤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출근길을 나섰는데 벚나무 밑에 세워두었던 차위에 빗물에 적셔진 벚꽃잎들이 유리창이며 차의 곳곳에 예쁜 꽃그림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차에 타는 순간 감동이 밀려와 한참을 가만히 숨고르기만 했다. 설레는 마음을 다잡고 운전에 집중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그날 나는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 달 전부터 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직장, 밤에는 온라인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공부하는 틈틈이 생각한다. 착하다 못해 바보스러운 남편 그리고 네 딸과 친구들, 언니, 동생들과 소박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2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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