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경주다문화가정 수기공모 작품 읽기 두 번째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 결혼한 여자/금상 - 남지수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2년 07월 16일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 결혼한 여자
금상 / 남 지 수
|  | | | ↑↑ 금상/남지수 | | ⓒ GBN 경북방송 | |
베트남에서 자라면서 드라마를 좋아하고 꿈꾸기 좋아하던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은 아름답고 부자면서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믿었다. 나도 한국에 시집을 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내 부모님께도 더 잘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품고 한국 남자를 선택했다.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만 믿고 따라왔다. 그렇지만 막상 한국에 오니 남편이 사는 시골집은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았고 내 꿈속에 있던 "코리아드림"은 깨져 버렸다. 막막한 현실로 인해 날마다 눈물을 흘렸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 속상하고 막막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베트남에 계신 부모님이 너무나 보고 싶었고 죄송했다.
'이제 내 인생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는데 어떻게 엄마 아빠께 효도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정말 신이 살아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엄마 아빠께 효도하려고 한국남자랑 결혼했는데...내 인생이 이게 뭐야... 흑흑...'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고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한국 땅 경주 안강으로 시집 올 때부터 나의 웃는 모습은 점점 사라졌고 매일 눈물이 났지만 마음속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남편과 나이 많은 시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답답했다... 아주 답답했다... 미칠 것 같았다.
남편은 작은 회사에 다니는데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다. 한국요리는 잘 못하지만 시어머님 따라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밥을 준비하고 남편을 위해서 밥상도 잘 챙겨줬다. 남편은 회사에 가고 시어머님은 논밭일로 무척 바쁘셨다. 하루 종일 혼자서 집에 있었고 남편이 집에 올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너무 심심하고 외롭고 갑갑해서 가출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네 가지 이유 때문에 가출을 할 수 없었다.
첫째, 남편을 생각했다. 남편은 돈이 없어서 한국 여자와 결혼은 못했고 외국 여성인 나와 결혼했다. 베트남에 갈 때 큰돈(천삼백만원)을 결혼 비용으로 썼기 때문에 내가 가출하면 남편은 이 돈도 아깝고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둘째, 항상 열심히 사는 친정 부모님, 한국에 시집온 딸이 열심히 살지 않고 가출한 소문을 들으면 얼마나 속상할까 생각하니 더욱더 마음이 아파왔다. 셋째, 나이 많은 시어머님, 아들이 늦게 결혼한 것도 속상한데 이제 외국 며느리까지 가출하면 시어머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넷째, 남편과 비록 나이 차이는 있지만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좋은 남편인데 이 사람과 헤어진다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어머님과 남편은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화내지 않고 늘 감싸주고 투정을 받아주던 남편. 늘 보듬어 주시는 시어머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돈 한 푼 없어서 모든 결혼비용을 빌려서 결혼한 불쌍한 우리남편. 이렇게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데 이제부터 딴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경주시에서 가장 행복한 다문화가족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한국어, 한국문화, 풍습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당시만 해도 경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없었고 한국어를 배울 책도 부족했다. 베트남에서 가져온 한국어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익혔다.
의사소통 때문에 시어머님과 대화를 할 수 없었고 시어머님의 마음도 몰랐다. 특히 밥 먹을 때 눈물과 밥을 섞어서 먹을 때가 많았다. 한국의 시골밥상은 매일 된장찌개, 김치찌개, 나물종류 등등. 시어머님의 기분이 좋을 때 나는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반대로 시어머님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씹지 않고 그냥 밥을 꿀꺽 삼키곤 했다. 의사소통 때문에 마음착한 시골 시어머님을 오해하고 잘못 판단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다. 한국말, 한국문화, 풍습을 잘 모르지만 시어머님께서 어디에 가시든지 따라 갔다. 시어머님과 함께 농사일도 배우고 논밭일도 함께 했다.
동네 어르신들께서는 나를 보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이 집에는 며느리가 논 밭일을 하니까 올해 수확 잘되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고 시어머님께서도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베트남 도시에서 태어난 내가 코리아드림을 꿈꾸던 그 한국 땅의 시골에서 농사일을 배운다고 생각하니 조금 속상했지만 꼭 경주시에서 가장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또다시 열심히 일을 배웠다.
대부분에 다문화 가족 부부들이 적응하는데 2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남편이 내가 심심하다고 생각해서 주말에 일하지 않고 나를 시내까지 태워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제일 감동한 건 외출할 때 베트남 사람을 만나면 남편이 나서서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알아 와서 나와 만나게 해주었다. 그 행동을 보고 마음속으로 또 한 번 고마웠다.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속상한 부분도 있었다.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했다. 남편은 술을 마신 날에 대리운전을 불러서 만오천원을 준다. 열심히 돈은 벌지만 술을 자주 마시니까 지출이 많고 난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너무 속이 상한 나머지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 크게 다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니 막상 갈 곳이 없어서 창고 옆에 있는 장롱에 들어가 숨어 있었는데 남편이 나를 찾는다고 여기 저기 다니고 방마다 찾고 다녔다. 그런데 장롱 속에 숨은 나를 못 찾고 지친 남편은 그만 잠이 들었다. 그때는 얼마나 속상하고 서럽던지 장롱 안에서 밤새도록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꼭 남편에게 내 마음을 전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여느 때처럼 아침밥상을 챙겨 주고 화난 목소리로 했다. "나 도저히 남편이랑 못살겠어요. 이혼하겠어요."라고 말이다. 계속 말했다. "남편이 돈은 없지만 나는 남편을 사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요. 술만 좋아하고 나는 속상하고 나는 불쌍해요." "나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그리고 예쁜 아파트에서 남편이랑 아기랑 시어머니랑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흑흑..."울면서 말했다.
|  | | | ↑↑ 단란한 가족 | | ⓒ GBN 경북방송 | |
남편은 말없이 나를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했고 앞으로 나에게 더 잘 해주겠고 또 술은 조금만 마시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때는 정말 남편이 미웠다. 그때는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어서 남편에게 화를 많이 냈고 매일 울면서 남편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니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두 가기를 더 깨달았다.
첫째, 한국에 살려면 한국말을 모르면 안 된다는 것과 둘째, 부부사이에는 대화가 통해야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우고 남편도 술을 적게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와서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기 시작했고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남편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 마음이 많이 아팠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남편과 함께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 일을 했다. 밭에 가서 나물종류를 심고 산에 가서 밤을 줍고 집에 가져와서 좋은 밤을 골라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집 근처에 있는 식당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리고 자동차 부품관련 부업도 했다. 번 돈을 통장을 넣었고 매달매달 20만원씩 적금도 했다. 생활이 힘들고 바쁘더라도 한국어를 안 배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바보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싫으면 한국어를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외국인 엄마라서 한국 엄마보다 더 열심히 배워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평생학습문화센터나 경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가서 한국어 수업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고 열심히 배운 나는 이제 희망 있는 미래를 보았다.
그렇게 울며 웃으며 지나온 세월이 벌써 7년이 되었고 시어머니께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시고 안심이 되셨는지 살림을 내어주셨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남편과 함께 모은 돈으로 예쁜 아파트를 장만했다.
|  | | | ↑↑ 사랑스런 두 딸 | | ⓒ GBN 경북방송 | |
그리고 우리부부 사랑의 결실인 예쁜 두 딸들이 잘 자라고 말도 잘 듣고 무엇보다도 유치원 수업을 잘 따라 가니 너무나 감사하고 정말행복하다.
2010년 7월13일부터는 통번역전문성 평가를 통과하여 베트남 통번역으로 선발되어 경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통역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직장을 다니게 되어서 많이 설레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만 같이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께서 나를 많이 도와 주셨다.
다문화가정에서는 의사소통, 문화차이, 세대차이로 인해서 사소한 일에도 부부갈등이나 고부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초기결혼 이민자라면 누구나 다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각 사연을 들어보면 모두 다 내가 겪었던 상황들과 비슷해서 더 공감이 되고 경험자로서 다 알려주고 싶다. 일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결혼이민자에게 통번역지원사 뿐만 아니라 상담자이며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이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이 꿈을 이룬다.” 인생의 목표를 정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내 꿈은 경주로 이주해 온 여성들에게 내가 고통스럽게 겪은 시간들이 있기에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이주여성들과 같은 동반자가 되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다. 그동안 살면서 얻어진 경험과 지식을 이주여성들에게 나눠 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같이 행복해 지는 것이 지금 내가 꿈꾸는 소박한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늘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날마다 다짐해 본다. |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2년 0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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