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 교수 음악산책(93)-20세기 음악의 제왕(帝王)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2년 07월 24일
|  | | | ↑↑ 안종배 교수 | | ⓒ GBN 경북방송 | |
20세기의 음악제왕(帝王)이라 불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의 무덤을 찾는 순례자가 지금도 많다는 보도가 관심을 모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카라얀은 81년간의 생애를 통해 정열과 독선과 카리스마로 일관하면서 기적의 인간으로 세계 음악계의 중심에서 활동을 했다. 그래서 오늘날도 세계 음악계는 그의 치하(治下)에 있다고들 말한다.
카라얀의 청년기는 세계가 격동하는 시기였다. 나치스의 준동(蠢動;1933)·태평양전쟁의 발발(1941)·소련공산당 선언(1948) 등으로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카라얀은 한 사람의 지휘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예술감독 겸 종신상임지휘자를 비롯해서 빈 국립가극장 예술감독·잘츠부르크 음악제 예술총감독·이탈리아 스카라 극장 독일오페라 부문 총감독·파리관현악단 예술총감독 등 유럽의 음악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음악산업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음악예술의 시각화(CD, VTR, DVD)에 기여한 업적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 | |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 ⓒ GBN 경북방송 | |
그의 청년시절은 고난과 시련이 겹친 세월이었다. 그는 21세 때 나치스 당에 입당을 한 다음 1931년에 국가지휘자로 승격을 했고, 31세 때는 제3제국 음악가로는 당시 음악계의 거두인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최고 음악가의 예우를 받았다. 그렇지만 카라얀은 1945년 제3제국이 패배하자 종전 직전에 베를린을 탈출했으며, 그의 앞날에는 큰 장애가 찾아왔다. 연합군의 이른바「비 나치화 재판」으로 모든 활동의 정지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이 시기를 재기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삼고, 철저한 재충전으로 다음 기회를 노렸다. 1947년 10월 지휘활동 금지가 해제되자 그는 곧 바로 런던 필하모닉·빈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며 재기를 했다. 그리고 1956년에는 격렬한 경쟁을 물리치고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겸 종신수석지휘자로 지명을 받은 것이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가 된 배경에는 미국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54년 푸르트벵글러가 타계한 뒤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미국연주여행을 계획했는데, 미국 측 매니저멘트인 콜롬비아 아티스츠가 카라얀이 동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해 와서 나치스 당원이라는 오명을 가진 카라얀을 지휘자로 지명을 했으며, 그로부터 33년 간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음악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2. 07. 23. ahnjbe@yahoo.co.kr |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2년 0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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