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2012년 기탁문중특별전!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 풍산류씨 문중전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2년 11월 19일
한국국학진흥원 2012년 기탁문중특별전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 풍산류씨 문중전”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 유교문화 박물관에서는 오는 11월 19일 본원 대강당에서 하회마을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기념하여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풍산류씨 문중전”이라는 주제로 하회마을을 만들어 나갔던 안동의 대표적 명가인 풍산류씨의 인물들과 생활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풍산류씨 문중전은 하회마을을 만들어왔던 풍산류씨들의 삶의 태도와 학문세계, 우국충정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학문을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풍산류씨 문중에서는 그 동안 모두 30,000여 점의 자료를 기탁하였는데, 그 가운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풍산류씨가의 삶과 학문을 보여주는 자료 60여 점을 엄선하여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라는 주제로 소개하는 전시회이다.
하회마을은 남쪽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하회에 이르러 잠시 동북쪽으로 선회하여 큰 원을 그리며 산을 휘감아 안고 산 안에 물이 흐르는 곳이다. 긴 타원형의 마을을 물이 돌아 나간다고 해서 ‘물돌이동’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하회河回 또는 하외河阝畏라고 불렀다. 하회는 이러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특별히 길지의 하나로 여겼다.
풍산류씨가 하회에 자리잡은 것은 고려말 조선초기 류종혜가 배상공과 함께 하회촌으로 이주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류종혜의 후손들이 세거함으로써 하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알려지고 있다. 풍산류씨 가문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사환하였으나 대표적인 명문으로 발돋움한 것은 16세기 류중영柳仲郢-운룡·성룡雲龍․成龍 부자대였다. 특히 류운룡․류성룡 형제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퇴계의 대표적인 안동지역 문인으로 인정되었고 특히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활동하면서 국난을 극복하는데 공헌하였으며,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서애학맥을 건설함으로써 한국 유학사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6세기 이후 풍산류씨 가문은 3대 6불천위(류중영, 류중엄, 류경심, 류운룡, 류성룡, 류진)를 배출하면서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으며, 세간에서는 ‘하회의 류씨는 늘 푸르다[河柳靑靑]’고 할 정도로 학문과 지조로 인정을 받은 가문이었다. 이러한 하회의 가풍은 항상 퇴계학맥을 고수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대표적인 양반의 세거지인 하회마을에서 지배계급인 양반과 선비의 허구성을 폭로 야유하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가 풍산류씨들의 묵인 하에 연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양반들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갈등과 저항을 줄여 상하간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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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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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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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대첩> |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2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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