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룡의 세상보기(83)-묘사 지내고 왔습니다
논 어(선진편 9)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2년 11월 26일
주말에 묘사(墓祀)를 지내고 왔습니다.
묘사는 음력 10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로 시향(時享), 시사(時祀), 묘제(墓祭),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도 합니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는 사당에서 올리는 제의(祭儀), 사계절 마다 올리는 사시제(四時祭), 입춘에 지내는 선조제(先祖祭), 묘소에서 기제를 지내지 않는 조상에게 드리는 묘제(墓祭), 돌아가신 날에 드리는 기제(忌祭) 등이 있습니다. 요즘은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대부분 묘제와 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이맘때면 묘사 떡 얻어 먹으러 참 많이 다녔습니다. 먹을 것은 궁했지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인심은 후했지요. 산비탈 너머 솔밭을 지나 솔 나무 사이의 모진 바람을 안고 지나 묘사가 끝나기를 침을 삼키며기다리면 얻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시루떡과 찰떡 한 덩어리, 능금 하나, 오징어 다리 몇 개를 얻으면 참 큰 수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변 산소에서는 인심이 더 후했습니다. 거기엔 아이 들에게 산소를 잘 살펴 달라는 무언의 부탁이 포함되어 있었지요. 마을 주변의 공동묘지는 아주 좋은 놀이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산소에 올라가거나 비석에 소 고삐를 묶어 두기도 하고 주변 잔디에서 축구를 하거나 씨름을 하는 등 각종놀이를 하기도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요.‘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고 묘사 떡을 후하게 받아 먹은 산소는 놀이터지기인 우리들에게 특별 관리대상이었습니다.
묘사를 하는 산소는 벌초를 한 곳입니다. 대부분의 집안이 그렇듯이 벌초와 묘사에는 늘 오는 사람만 오고, 오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이유를 챙겨 참여를 않습니다. 벌금을 매겨도 보지만 결국엔 어쩔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저희는 얼마 전부터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대표를 임명하고 책임을 지도록 해 이젠 기금도 제법 모였습니다. 올해 윤달에 재종숙(再從淑)이 당신을 기준으로 4대조 이상의 모든 산소의 유골을 화장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울창한 산의 원형탈모 같은 곳을 손질했습니다.
그리고 위패를 한곳에 모셨습니다. 앞으로는 벌초와 묘사가 한결 쉬워졌지요. 묘사를 마치고 오는 길은 회비 단 2만원을 내고 몇 백배의 음덕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겨울은 포근히 깊어가고 있습니다.
조상의 음덕(陰德)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덕(心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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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어(선진편 9)
제25 장 : 나라를 다스림에 예로서 해야한다.
子路曾晳冉有公西華 侍坐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자로증석염유공서화 시좌 자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거칙왈 부오지야 여혹지이
則何以哉 子路 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 爲之 칙하이재 자로 솔이이대왈 천승지국 섭호대국지간 가지이사려 인지이기근 유야 위지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求爾何如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비급삼년 가사유용 차지방야 부자신지 구이하여 대왈 방륙칠십 여오륙십 구야위지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赤爾何如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비급삼년 가사족민 여기례락 이사군자 적이하여 대왈 비왈능지 원학언 종묘지사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點爾何如 鼓瑟希 鏗爾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여회동 단장보 원위소상언 점이하여 고슬희 갱이사슬이작 대왈 이호삼자자지찬 자왈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莫春者 春服 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하상호 역각언기지야 왈 막춘자 춘복 기성 관자오륙인 동자륙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이하생략)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보다 이를 더 먹었다고 해서 어려워하지는 마라. 너희들이 날더러 몰라준다고 말하지만, 만약 알아준다면 어찌하겠느냐?”자로가 불쑥 나서며 말했다.“제후의 나라가 전쟁과 기근으로 곤란당한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 약 3년 안에 부강하게 할 수 있으며, 또한 예법을 알게 하겠습니다.”
공자께서는 빙그레 웃으시고 또 구에게 물으셨다. 구가 말했다. “사방 6,70리 또는 5,60리 되는 나라를 위해 제가 일 한다면 대략 삼 년 안에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겠지만 예약 같은 것은 군자에게 의지하겠습니다.”
공서화에게 묻자 그가 말하기를 “제가 할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싶습니다.
종묘의 일과 회합 같은 일에 검은 예복과 예관을 갖추고 돕고 싶습니다.” 증석에게 묻자 그가 말하기를 “저는 이 사람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늦은 봄 봄옷을 만들어 입고 어른 대여섯 명과 동자 육칠 명과 함께 강에서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다가 노래를 읊으며 돌아오렵니다.”
공자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나도 너와 같다!”세 사람은 물러나오고 중석이 뒤에 남아 있다가 말했다. “세 사람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각자 그 뜻을 말했을 뿐이다.”“선생님께선 유의 말을 들으시고 왜 빙그레 웃으셨습 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도 예로서 해야 하는데 그는 말을 하는 데도 겸양할 줄 모르고 웃었던 것이다.”(이하생략)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2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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