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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배 교수 음악산책(111)-유랑광대 강준섭과 광대(廣大)의 내력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2년 11월 26일
ⓒ GBN 경북방송


우리 나라 토종 광대(廣大)의 마지막인 유랑광대 강준섭이 2009년에 서울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3년 만에 무대에 올라 관심을 끌었다.

요즘 글로벌 추세에 따라 우리의 전래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을 때, 서민대중의 애환이 담긴 광대극에 관심이 쏠렸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인 강준섭은 진도다시래기 기능보유자인데, 이때 공연에서는 전라도 농악에 쓰이는 장단의 한 가지인 오채지굿으로 막을 열었던 것이다.

일제시대 경주 동부동 경찰서와 소방서 옆의 도로가 그때는 꽤 넓은 광장이었다. 여기서 가끔씩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가 열렸으며, 광대들이 이곳에서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노동동(농협 동편)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광장과 가까워서 여러 가지 행사를 자주 구경할 수가 있었다.

국어사전에는 광대를 ‘지난 날 줄타기나 판소리․가면극 따위를 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는데 광대의 내력을 살펴본다.

광대는 고려 때부터 전래하는 예능인(藝能人)을 말한다. 사천(私賤;개인의 집에서 부리거나 매매되던 종)으로서, 재인(才人;제주를 넘거나 악기로 풍악을 치던 광대) 과 함께 하층계급에 속한다.


ⓒ GBN 경북방송

이들은 궁중의 나례(儺禮;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에서 잡귀를 쫓는다 하여 베풀던 의식)나 중국 사신의 영접 때, 또는 귀족의 연석(宴席)이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산대노름;고려 때 비롯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전해오는 우리 나라 고유의 가면극을 말하며, 민속적인 놀이의 성격을 띤 것으로 양반이나 파계승에 대한 조롱․서민생활․처첩 관계 등을 풍자적으로 나타내고 있음)이 있을 때, 배우로서 예능(藝能)에도 관여를 했다.

당시 나라에서는 금무정책(禁巫政策)을 폈지만, 실제로는 행사가 있으면 선발된 광대는 서울에 올라와 궁궐에서 정재인(呈才人;궁중무를 다루는 예인)으로 등장을 했다.

광대는 판소리 창(唱)도 직업으로 겸했으니, 남도창(南道唱)을 북도(北道)에, 북도 창을 남도에 소개하여 문화의 전파자 역할을 했다.

광대는 농사를 짓지 않는 걸랑꾼으로 생활하거나 관아(官衙;관원이 모여 공무를 보던 곳)에 매여서, 한정된 수효와 천분(賤分) 여하에 따라 분화과정을 밟았다.

또 그들은 천인(賤人)인 무당과 내혼(內婚)을 해서 세습 유랑민으로 기생(寄生)할 수 있는 개인적인 지위도 마련하였던 것이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2. 11. 26. ahnjbe@yahoo.co.kr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2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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