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 교수 음악산책(112)-음악콩쿠르는 승부를 결판내는 결투의 장(場)이었다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2년 12월 03일
|  | | | ↑↑ 안종배 교수 | | ⓒ GBN 경북방송 | |
-음악콩쿠르는 승부를 결판내는 결투의 장(場)이었다-
요즘 우리 나라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 유명 음악콩쿠르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한국종합예술학교 부설 영재 교육기관을 비롯한 15세 이하 새내기들도 그들 나름의 세계적인 콩쿠르에 참가해서 많은 성과를 올리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옛날 음악콩쿠르는 요즘과 달라서 음악가가 1대1로 승부를 결판내는 결투의 장이었다. 작곡과 연주를 겸하던 시대에는 음악콩쿠르는 국왕이나 귀족이 주최를 했다. 음악가는 자신의 재능을 겨루어 승리를 해야 출세가 보장되고, 패하면 세상에서 매장이 될 뿐 아니라 음악활동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의 무치오 클레멘티(1752~1832)는 쳄발로의 달인(達人)으로, 소나티네 앨범에 이름을 남긴 피아니스트이다. 그가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와 오스트리아 황제 앞에서 어전(御前)콩쿠르를 가졌다. 이때 황제는 모차르트의 애호가로서, 모차르트가 연주할 때 ‘브라보’를 연발했다. 그리고 결과는 모차르트의 승리였다. 클레멘티는 그후 음악활동을 포기하고 출판업을 했는데, 모차르트의 작품을 한 곡도 출판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경연을 하지 않고 승리를 거둔 경우도 있다. 大바흐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프랑스의 오르간 대가인 루이 마르샹(1669~1732)과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대결을 할 예정이었다. 당일 바흐는 지정된 백작(伯爵)의 집으로 정시에 나갔다. 그런데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르샹은 프랑스의 궁중음악가로 위세가 당당해서, 도전자인 바흐는 예의를 갖추어 영접을 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마르샹은 드레스덴을 빠져나가 도망을 가버렸다. 이때 바흐는 32세, 마르샹이 48세였다.
독일의 작곡가 게오르크 헨델(1685~1759)이 이탈리아의 명 피아니스트 도메니코 스카를라티(1685~1757)와 로마에서 대결을 할 때이다. 로마의 추기경 오토보니(교황 알렉산더 Ⅷ세)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홈그라운드인 스카를라티는 먼저 미소를 띠면서 화려하게 연주를 했다. 다음 차례인 헨델은 마음속에 스며드는 감동적인 곡상으로 청중을 매료시켜서 1차 전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래서 장소와 악기를 바꾸어 2차 전에서 자웅을 가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헨델이 먼저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감탄과 갈채로 화답을 했다. 그러나 다음 차례인 스카를라티는 정중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헨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자신이 패했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관중들은 두 사람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무튼 콩쿠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악가에게는 출세의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2. 12. 3. ahnjbe@yahoo.co.kr |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2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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