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 교수 음악산책(130)-세계무형문화유산의 ‘남사당(男寺黨)놀이’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04월 08일
|  | | | ⓒ GBN 경북방송 | | 근간에 우리의 ‘아리랑’이 세계무형문화제에 등재가 되어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에 앞서서 2010년에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제3호)․강강술래(제8호)․처용무(제39호)․영산재(제50호)․제주칠머리당영등굿(제71호)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등재가 된바 있다.
인류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취지로 유네스코가 선정해서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에 우리나라 무형문화재가 이렇듯 많이 선정되어 등재가 된 것은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는 쾌사가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조선후기 농․어촌을 돌며 양반사회를 비판하고 서민과 애환을 나누었던 ‘남사당놀이’는 전래민속 가운데서도 서민과 떼어놓을 수 없는 민속놀이이다.
‘남사당’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소리나 춤을 팔고 살아가는 남자무리를 말한다. 사당(寺黨․社黨․舍黨․捨黨)은 원래 행실이 깨끗지 못하고 향락적인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때로는 몸도 팔며 천하게 노는 여인들을 일컬었으며, 남자들 중에서도 사당처럼 향락적으로 천하게 지내던 자들이 있어서 이들을 ‘남사당’이라고 불렀다. 어원은 여사당(女社黨)에서 유래했으며 이들은 예인집단(藝人集團)을 만들어 각지를 유랑하면서 노래․춤․재주를 업(業)으로 삼았으고 사당폐(社黨牌)라고도 한다.
사당패는 조선중엽부터 시작되었는데 패를 지어 다니면서 표면상으로 노름꾼이나 하층계급 남자들의 주석(酒席)에서 노래와 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었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상대로 매춘행위를 하는 여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거사(居士)로 불리는 남자와 부부관계를 맺고 짝을 맞추어 일정한 절에서 받은 부적(符籍)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것을 팔았고, 손님이 주는 화대는 거사에게 바치는 대신 의복․화장품 등의 용돈은 거사로부터 지급을 받았다.
사당패는 모갑(某甲/꼭두쇠)밑에 일단의 조직을 형성했으며, 꼭두쇠와 거사(居士)는 걸립패(乞粒牌;동네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무리를 지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악을 울리고 돈과 곡식을 얻는 일)출신이 많아, 놀이마당에서는 사당을 업고 나간다든지 잔일 뒷바라지와 경리를 맡아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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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나타난 ‘남사당놀이’는 풍물(風物;농악을 이르는 말), 버나(대접 돌리기)․살판(땅재주의 하나)․어름(줄타기 재주)․덧뵈기(탈놀이)․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섯 가지 놀이를 차례로 보이면서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宿食)만 제공받으면 마을 큰 마당에서 밤을 새워 놀이를 벌였다.
‘남사당놀이’는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는 노래가 많다. 그 중에서도 사당자탄가(寺黨自嘆歌)는 각처로 유랑하면서 청중이 던져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당(社黨)의 비참한 생활상을 해학적으로 노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3. 4. 8.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04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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