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출신 주낙영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부임
-중앙부처에서 7년 만에 경북으로 돌아왔다-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3년 05월 16일
주낙영(52세) 경상북도 행정부지사가 중앙부처에서 7년 만에 경북으로 돌아왔다.
도청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주 부지사는 “중앙부처, 대통령실, 뉴욕총영사관 등 많은 곳을 거쳤지만 한시도 경북을 잊어본 적이 없다”며, “경북을 위해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는 말로 취임 소감을 밝혔다.
이어서 “김관용 도지사를 중심으로 혼연일체가 돼 거침없이 질주하는 경북을 지켜보면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다”며, “미래를 향한 ‘경북호’가 더욱 가속을 낼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할 것”이라면서 “서민생활과 직결된 정부정책의 온기를 현장에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며, 이스탄불-경주문화엑스포, 도청이전 등 당면 현안들도 차질없이 추진되도록 세밀하게 챙겨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낙영 부지사는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합리적인 리더십을 지니고 있으며, 국제적인 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 부지사는 경주 출생으로 능인고, 성균관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아이오와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9회 행정고시에 합격 한 후 경북도 기획관, 상주부시장, 경제통상실장, 자치행정국장을 지냈으며, 행정자치부 균형정책관,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 실무위원,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뉴욕 부총영사, 안전행정부 제도정책관 등을 거쳤다.
[아래는 7년 전 주낙영 부지사의 경상북도 경제통상실장 재임 시절에 당시 경주신문 부사장이었던 본사 황명강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재수록 했다.]
|  | | | ↑↑ 주낙영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 | ⓒ GBN 경북방송 | |
주낙영 경상북도 경제통상실장을 찾아서(경주신문 보도)
황명강
어느 거리에나, 누구나의 마음속에나 가을은 설레며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가을에는 낙엽 한 조각도 노래가 되고 詩가 되기도 한다. 가로수가 행인들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대학로 지나 대구시 북구에 위치한 경상북도 도청을 찾았을 때, 결실의 계절에 맞추어 민선자치출범 이후 그동안의 노력이 좋은 성과로 나타나고 있어서인지 스쳐가는 복도에서도 넘치는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2003년도 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단체 시책 평가에서 경상북도는 1위를 차지하였고 지역경제부문 1위를 끌어낸 주역이기도 한 경제통상실에서 여전히 바쁜 주낙영실장을 만날 수 있었다.
1960년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전포마을에서 태어난 주낙영실장은 황남초등학교에 다니던 중 대구로 전학하여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졸업했다. 그 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도시계획학 석사)을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11월 25세의 나이로 행정고시 29회에 합격하여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공직의 길로 들어선 이래 전공을 살린 주낙영실장의 업무능력은 실로 눈부시다고 주위에서 전하고 있다. 1987년 경상북도 방역계장, 환경관리계장, 홍보계장으로 출발 1992년 국비해외훈련 1996년 경상북도 공무원교육원 교학과장 1997년 경상북도 정보통신담당관 1998년 경상북도 자치행정과장 1999년 경상북도 기획관 2001년 경상북도 비서실장 2002년 상주시 부시장 2003년 경상북도 경제통상실장으로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제통상실장의 업무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막중한 일임을 사무실 분위기로도 미루어 짐작이 갔지만 길지 않은 대화를 통해서 단단히 무장된 주낙영실장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경상북도 내의 경제 활성화에 관한 모든 일이 설계되고 외자유치라든가 국제교류, 중소기업 육성 등의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민선 3기에 접어들면서 기업하기 좋은 경북으로 만들기 위해 ‘세일즈 경북도정’시책을 내세우며 종횡무진한 결과 경제구조가 개편되고 있고 얼마 전에는 ‘동북아 자치단체국제연합 상설사무국’을 경상북도에 유치했다.
올해 상반기에 외국투자유치 7억불(전국 2위)의 실적을 올렸으며 10월 8일부터 3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경북 물산전 또한 2만 여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대성황을 이루어 106억원의 판매 및 계약을 올렸다. 자신을 던지다시피 일에 몰두하는 점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주낙영실장의 답은 명쾌했다.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현재는 매우 중요한 국면에 처해있다. 모든 것을 총 동원하여 작게는 우리 경상북도를, 나아가서는 이 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소명이 일선에서 뛰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졌다. 누군가는 그 일에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한 목소리였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하나 되어 뭉친다면 엄청난 고유가시대를 맞아 침체되어가는 경제상황을 거뜬히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았다.
활달한 음성과 시원한 외모 뒤에 숨겨진 예리함. 고분 위에서 병정놀이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주낙영실장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크고 작은 청사진을 그려내고 있었다. 경주가 문화관광도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산업의 메카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국제회의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포항, 울산을 잇는 경제밸트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경주의 경제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희망적인 앞날을 예견하고 있었다.
선산이 가까운 건천읍 모량리에 부모님(부친 주홍탁씨, 모친 홍매리여사)이 계셔서 1달에 두 번 정도 경주를 찾는 주낙영실장은 바쁜 가운데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있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 부인 김은미씨와의 사이에 수형, 신형 남매를 두고 있으며 틈이 나면 가끔 등산을 즐기는 모범 가장이라고 한다.
이 시대의 가장 중심을 흐르는 급류를 정의롭게 헤쳐 나가는 주낙영 경제통상실장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면서 고향 쪽으로 애정 어린 눈길 보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
진혜인 기자 / gbn.tv@daum.net  입력 : 2013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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