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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제32호 금곡사, 그 곳에도 봄이 왔을까"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 입력 : 2013년 06월 05일
제32호 금곡사, 그 곳에도 봄이 왔을까
진나라는 문교를 숭상하는 나라로 일컬어 졌으므로 그는 이전에 가졌던 의문들을 질문하여 이해하고 도(道)를 물어서 뜻을 깨달았다. 처음에 장엄사(莊嚴寺)의 중인 민공(旻公)의 제자에게 청강하였지만 원광 자신은 스스로 속세의 경전에 익숙하여 이론으로는 자신이 오묘한 경지에까지 올랐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막상 불법의 강설을 듣고 보매 도리어 그것은 썩은 검불이나 다름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한 충격으로 인하여 그는 여러 강설하는 모임을 찾아 돌아다니며 성실론과 열반경 등을 공부한 뒤, 오(吳)나라의 호구산(虎丘山)에 들어가 선정에 힘썼다. 그는 좋은 방도를 다할 대로 다하여 오묘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세월을 아끼지 않았고 아함경을 연구하면서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고자 하였으나, 많은 수행자들이 찾아와서 강의를 청하였고 성실경와 반야경을 설하면서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이 때 남북조로 갈려져있던 중국은 수나라에 의하여 통일되었는데, 진나라의 수도인 양도(揚都)에서 전쟁포로로 붙잡혔다가 풀려나 장안의 흥선사(興善寺)로 가서 그곳에서 섭론종(攝論宗)의 논서들을 연구하면서 중국불교계에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
|  | | ↑↑ 사진) 금곡사 원광법사 부도(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산9-1)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원광(圓光)은 진한 사람으로 이 땅에 대대로 살아 조상의 전통이 멀리 잇닿았고 총명한 바탕에 도량이 크고 넓었다. 또 글 읽기를 좋아하여 유교의 깊은 이치를 연구하고 여러 대가들의 글과 역사 서적들을 분석 검토하여 삼한지역에서도 문장이 뛰어나기로도 유명하였다. 그러나 지식의 해박함과 풍부함에서는 중국에 비하여 부끄러운 바가 있었기에 그는 드디어 친한 친구도 끊어버리고 먼 해외로 갈 것을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34세에 주술을 좋아하는 한 승려의 죽음을 보고 진평왕 11년(589) 진(陳)나라에 공부하러갔다. | | ⓒ GBN 경북방송 | |
원광은 진평왕 22년(602)에 신라의 사신을 따라 1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니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반가워하였으며, 진평왕도 직접 존경하는 뜻을 표하고 원광을 성인처럼 떠받들었다. 원광은 성품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아 누구나 사랑하였으며 말할 때는 언제나 웃음을 머금었고 성낸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임금에게 바치는 글이라든가 외국과 내왕하는 국서(國書)등이 모두 그의 가슴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그의 성품은 물론 학식 또한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애국심 또한 남달랐다. 진평왕이 재위 30년(608)에 고구려를 공격할 군사를 청하기 위해 원광에게 수나라의 군사를 청하는, 걸사표(乞師表) 작성을 명령하였다. 이에 원광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멸하는 것은 승려의 도리가 아니지만, 제가 대왕의 나라에서 대왕의 수초를(水草)를 먹으면서 어찌 명령을 따르지 않으리오’ 하며 글을 지어 바쳤다.
원광이 걸사표(乞師表)를 지은 것은 종교적 신앙심을 버리고 지배계급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 같지만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역사평가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원광의 선택은 오늘날 까지도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는 세계화속에서 살고 있는 요즘 고대의 사회적 통념에서 행하여졌던 교훈들도 오늘날 사회적 관념을 기준으로 볼 때 수정하고 보완하여할 부분도 있지만 그의 이러한 실천은 오늘날에 와서도 종교적인 신앙심과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만큼 소중한 것이 내가 살고 있는 국가의 안위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원광은 뜻을 품고 타국에 가서 끊임없이 수행하고 공부하여 세상의 이치를 알았을 때 고국으로 돌아와 나라의 백성들에게 그가 배운 선진문화를 끊임없이 베풀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해외의 선진문화를 배우기 위해 타국으로 떠난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옛날 원광이 보여준 나라와 국민을 위한 배움은 이제 스스로의 입신을 위한 투자로 변해버렸다. 우리의 앞선 세대들의 땀과 노력으로 힘들게 일으켜세운 경제력이 배움이라는 빛 좋은 허울 속에 소비되어지는 지금 진정, 국가와 사회를 위한 배움이 무엇인지 원광법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 본다. |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  입력 : 2013년 06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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