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제38호 조선시대 과거시험지와 SAT시험"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 입력 : 2013년 06월 21일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에 비해 매우 엄격한 검증을 통과해야 했다. 당시의 결격사유로는 국가 관료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한 범죄자, 국가재산을 횡령한 자의 아들, 두 번 시집갔거나 행실이 나쁜 여자의 아들과 손자 등이 해당되었으며, 문과의 생원시와 진사시의 경우는 이와 더불어 서얼(庶孼) 자손 등도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또한 향시에는 본도 거주자가 아닌 사람이나 현직관료는 응시할 수 없었으며, 현직 관료는 한성시에만 응시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본다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제도로, 유교적 중심의 근대사회였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 | ↑↑ 관찰사 배삼익 신도비각(경북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비지정문화재) 사진출처)봉화군청 문화재과 전대성
신도비(神道碑)는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이다. 임연재 배삼익의 신도비는 동문 후배인 서애 류성룡이 1596년(선조 29)에 지었다. 비문에는 임연재와 서애가 함께 시험을 치면서 일어난 일을 기술하고 있다. ‘시험문제가 나오자 그는 그다지 생각하지도 않고 날이 저물기 전에 두 편 모두를 완성하고도 왕성하게 힘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시는 완성했으나 쓰지 못하자 그가 나를 대신해 썼는데, 채점을 함에 나는 다행히 합격하였으나 그는 뜻을 펴지 못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감에 내가 다시 술을 가지고 가서 전송하면서 요행과 불행이라는 말로 작별하였다.’라 기록되어 있다. | | ⓒ GBN 경북방송 | | 과거 시험지는 시지(試紙) 또는 명지(名紙)라 하였으며, 시험지, 붓과 먹은 응시자가 마련하여야 했다. 시험지를 국가에서 주는 오늘날과는 달랐다. 그런데 서울의 문벌가문 자제들은 두껍고 좋은 자문지(咨文紙)나 창호지를 사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시험지를 역서(易書 : 글씨체를 보고 채점에 영향 받을 것을 우려하여 서리가 답안 내용을 다시 베껴 쓰는 것) 하지 않고 그대로 채점하는 생원시와 진사시의 경우 시험지의 질에 따라서 부정이 생길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험지는 최하품의 도련지를 쓰도록 제한했다. 규정을 어기고 좋은 종이를 제출하는 자는 시험 자격을 박탈하고 시험지를 불살라버렸다.
또 시험지는 시험이 있기 열흘 전에 서울은 4관(四館: 예문관 성균관 승문관 교서관) 관원이, 지방은 입문관이 접수하여 기록사항을 검토한 다음 ‘근봉’이라는 도장을 찍어주어 시험 칠 자격검증과 함께 시험지를 검인하였다. 만일 부탁을 받아 규격 외의 시험지를 냈는데도 도장을 찍어주는 경우에는 그 관원을 파직하고 시험장에서 이를 적발해내지 못한 시험 관리관도 역시 파직하였다. 또한 응시자는 시험지 윗부분이나 끝 부분에 본인의 관직, 이름, 나이, 본관, 거주지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이름과 본관을 다섯줄로 쓰고 관원들이 응시자의 이름을 알아볼 수 없도록 그 부분에 종이를 붙이거나 원통처럼 말아 올려야 했다.
이처럼 응시자의 이름을 알아 볼 수 없게 하는 방법으로 호명법(糊名法)과 봉미법(封彌法)이 사용되었다. 호명법은 이름 위에 종이를 붙여 가리는 방법인데, 종이를 들추고 이름을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 봉미법으로, 봉미법은 본인과 조상의 인적사항이 적힌 부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말아 올려 상 중 하 3곳에 세로로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었다.
시험보는 날 새벽 입문관(감독관)은 녹명책을 보고 응시자를 호명하여 들여보낸다. 수협관(검사관)은 문 밖에서 좌우로 갈라서서 응시자의 옷과 소지품을 검사했다. 만일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자는 금란관(禁亂官)에게 넘겨 처벌하는데 시험장 밖에서 걸리면 1식년(3년), 안에서 걸리면 2식년(6년) 동안 시험 볼 자격을 박탈당했다.
몇 년 전 우리국민들은 국가기관에서 특채하는 시험에 고위직으로서 또는 그 부하직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악용한 부정이 개입된 사례들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 한 국가의 평범한 국민으로서 서글픈 현실을 절감해야만 했다. 부하직원이 알아서 상급직원의 자녀들에게 규정을 넘어선 시험 기회를 제공하고 채점 또한 유리하게 한 것은 물론, 한 발 더 나아가 그 상급직원은 이를 알고도 모른 척 눈 감아 주어 국가기관의 인재선발에 있어 그 근간이 되어야 하는 공신력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정당하게 했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이라며 한편으로는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선조들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게 했다.
또 지난 주 미국 대학 입학시험인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는 미국 대학 위원회와 교육평가서비스 공동주관 하에 1년에 8~10여회(한국 5회) 차례 실시되는 시험으로 미국대학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가를 예측하기 위한 학력평가 테스트이며, 대학 위원회가 대학에서 성공적으로 공부 할 수 있는 학생들을 선정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시행되는 시험이다.) 문제가 유출되어 5월에 이어 6월에 한국에서 예정되었던 SAT시험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한 국가에서 전체적으로 시험이 취소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 이라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과거시험에 있어 혹여 시험지의 질을 통해 알 수 있을 지도 모를 빈부, 신분의 분별마저 없애려 노력했으며, 더 나아가 혹여 그러한 부정이 저질러졌을 지도 모를 것을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부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노력하였음을 많은 기록을 통해 살필 수 있었다. 물론 류성룡의 일화에서처럼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전성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시험에 부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는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문제를 유출하고도 오히려 그로 인해 그 유출처가 단 번에 인기학원으로 등극하고, 더욱이 자식교육과 고득점 앞에서 부모들은 등록을 위해 그 학원 앞에 장사진을 치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닌 말로 누가 감히 그런 학원에서의 수강을 거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래도 보다 높은 배움과 노력을 통해 사회 지도층이나 엘리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엄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평범한 일반인들에 준하는 도덕과 양심의 잣대를 가지고 지식과 믿음이 일치된 자신 스스로를 향한 양심선언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된다. |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  입력 : 2013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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