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142)-파트타임․서머타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생애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07월 01일
|  | | | ⓒ GBN 경북방송 | |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점차 세계가 주목하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유태인 작곡가로 불우한 생애를 마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향이 2010년~11년에 말러의 9개 교향곡(교향곡 10번은 유작으로 음악학자 데릭 쿡이 완성)전곡 연주의 대장정을 실천했으며, 대전시향, 부산시향, 서울 유스오케스트라 등이 말러의 교향곡 작품을 연주했을 뿐 아니라,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한 여러 나라 오케스트라가 내한해서 그의 작품을 많이 연주를 했기 때문에 클래식 팬들에게는 친숙한 작곡가로 알려지고 있다. 말러의 선조들이 살고 있던 보헤미아 칼 리슈트 지방은 폴란드로부터 박해를 면하기 위해 유태인이 모여든 곳이다.
179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2세가 악명 높은 가족법을 공표해서, 양친이 유태인일 경우 장남에게만 결혼을 인정하고, 그 아래 자녀들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국으로 이주하지 않고는 모두 사생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말러의 할아버지도 장남이 아니어서 가족이 모두 교회 기록에는 사생아로 등재되어 있다. 이러한 혈통을 이어받은 말러는 평생을 세계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이 없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던 작곡가이다.
말러는 3세 때, 장난감 아코디언으로 혼자서 음계를 익히고 ‘군대행진곡’을 연주해서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며, 6세 때, 외할아버지 집 다락방에 있는 낡은 피아노를 보고 날이 저물 때까지 연주를 하여, 외할아버지가 감탄해서 피아노를 외손자에게 준 것이 음악가로 대성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말러는 어릴 때 유태인이라는 콤플렉스로 순교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하여 독서에 열중했으며, ‘책이야말로 유일한 친구이며 형제이고 부모와 연인’이라 믿고, 아리스토텔레스․도스토예프스키․괴테․칸트․실러․쇼펜하우어 등의 저서를 독파했으며, 순수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고전문학과 낭만주의 작품에 심취하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말러의 성격을 말해주는 사생활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집중하는 일 이외는 관심을 두지 않고, 실물(失物)을 예사로 했으며, 담배를 스푼으로 착각하고 커피를 젓는가하면, 연기로 생각하고 커피를 입 밖으로 불어내는 등 산만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던 것이다.
신장 160㎝, 야윈 몸매의 말러는 빈 음악원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한 후, 빈 국립가극장 음악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오케스트라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작곡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빈 국립가극장(그는 관청이라고 했다) 출근 시간까지 계속했으며, 여름 휴가 때나, 일상생활에서 틈이 나면 작곡을 했기 때문에 그를 두고 파트타임․서머타임 작곡가로 불렀다.
말러는 빈 음악원 때부터 안톤 브루크너를 스승으로 존경했으며,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였지만, 브람스를 “도량이 적은 소심자(小心者)”라고 비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3. 7. 1.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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